한가연 2017.07.30 11:22:56

내 영혼의 멘토

- 영화 Good Will Hunting이 주는 교훈 -

 

골로새서 1:28-29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1. 상처받은 영혼

 

사람이 살면서 누구를,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의 질과 내용이 달라집니다. 그러니까 만남 중에는 참으로 복된 만남이 있을 수도 있지만 차라리 만나지 아니하였더라면 더 좋았을 그러한 만남도 분명히 있습니다.

만남에는 3가지 종류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 첫 번째가 생선같은 만남입니다. 만지기만 하면 비린내가 나는 만남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만나봤자 도움은 주지 못하고 상처나 주고 아픔만 남기는 그러한 만남입니다. 시기하고 질투하고 싸웁니다. 그러니 상처를 주고 원한을 남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만남은 오래가면 갈수록 썩은 냄새만 진동시키게 됩니다.

두 번째는 꽃과 같은 만남이 있다고 그럽니다. 만나면 향기가 나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지만 금방 시들어 버린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연구소도 보면 무슨 프로그램이 끝나고 은혜 받게 되면 자기들끼리 매달 만나자느니 계속적으로 어떻게 하자느니 그러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 잊혀져 버리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이렇게 금방 뜨거워졌다가 금방 식는 그러한 만남을 꽃과 같은 만남이라 그럽니다. 풀은 쉬 마르고 꽃은 10일을 넘기지 못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꽃과 같은 사랑을 풋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손수건과 같은 만남이 있다고 말합니다. 상대가 슬플 때 눈물을 닦아주고 상대방의 기쁨이 내 기쁨이 되는 그러한 만남입니다. 이렇게 마음을 같이하는 만남은 당연히 서로의 땀도 닦아주고 언제나 함께 하는 만남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 부부의 만남도 이러한 손수건과 같은 만남이 되어야 하고 목사와 성도간의 만남도 당연히 손수건과 같은 만남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세 가지 외에 하나 더 덧붙이고 싶은 만남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서로의 마음 가운데 깊이 머물 뿐만 아니라 그 영혼을 이끌어 주며 치유까지 해 주는 그러한 만남입니다. 정말로 복된 만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만나게 될 영화 ‘Good Will Hunting’이 바로 그러한 만남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스크린샷_073017_112213_AM.jpg

주인공 윌헌팅은 고아로 자라다가 입양이 됩니다. 그런데 입양을 한 양 아버지에게 습관적으로 엄청난 폭행을 당합니다. 그 뒤로는 또다시 다른 가정으로 입양되어도 견디지를 못하고 되돌려지는 경험을 반복하다가 결국 폭행과 절도로 소년원 신세를 지는 문제아로 자라납니다.

그런데 윌 헌팅은 천재적인 머리와 재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그러한 재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동네공장의 벽돌공으로 살아갑니다.

여러분! 인간은 원래 환경의 지배를 받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과거의 기억들이 지금의 나를 지배하게 됩니다. 윌헌팅의 양아버지에 대한 엄청난 충격은 말할 수 없는 상처로 마음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상처받은 인격에 지배받고 있는 윌은 그 어떠한 천재성도 심리적 아픔에 가려질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비극이 있습니다.

여러분! 윌은 대단한 천재성도 있었고 음악을 즐기는 그런 청년이었지만 또 다른 면에서 보면 지극히 폭력적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천재성이 내면적 본질이라면 양아버지가 준 상처로부터 비롯된 폭력성은 내면적 본질을 뒤덮어버리는 외면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윌은 어렸을 때부터 학대를 받아 왔습니다. 그리고 가난을 벗삼아 살아갔습니다. 그래도 윌 곁에는 괜찮은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그렇게 유지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윌에게 그러한 친구라도 없었더라면 더 깊은 고독으로 인해 더 난폭해졌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우리들은 윌이라는 청년을 통해 참으로 중요한 것을 깨닫습니다. 부모들은 별 생각없이 자녀들을 닦달하고 상처를 주지만 그 영혼의 상처들은 결국 그 자녀의 미래를 어둡게 덮어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윌과 양아버지의 만남은 참으로 불행한 만남이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무엇이 사람을 치료하는가?

 

그렇게 상처를 마음에 품고 상처로 인해 자신에게 숨겨진 보석을 묻어버리고 살던 윌이 폭행죄에 대한 봉사명령으로 그 유명한 MIT대학에서 청소로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램보라는 수학교수가 학생들에게 어려운 숙제라면서 낸 숙제가 있었는데, 학생들 어느 누구도 손대지 못했던 그 수학 문제를 윌이 발견하고는 쉽게 풀어 버립니다. 그것도 대충 낙서해 가듯이 말입니다.

그 다음 날, 학교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누가 그 문제를 풀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학생들 가운데서는 아무도 푼 사람이 없었는데 그 주인공이 누군가에 대해 관심이 쏠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연찮게 문제의 칠판에 낙서하는 윌을 램보 교수가 발견하게 됩니다. 램보 교수는 윌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윌을 자신의 연구에 활용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다가 윌이 친구들과의 폭력 사건으로 경찰서에 잡혀가게 되고 이를 알게 된 램보 교수가 보증을 하면서 수학연구와 심리학자들을 통한 상담을 하기로 약속하고 풀려나게 됩니다.

감옥에서 풀려난 윌은 램보 교수의 조언대로 여러 심리학자들을 찾아 가지만 그 심리학자들은 그야말로 형식적이고 사무적인 상담을 시도합니다. 그러다가 오히려 윌에게 무안만 당하고 오히려 놀림감이 되고야 맙니다.

그러자 결국 램보 교수는 한때 경쟁관계에 있었던 옛 친구, 숀을 찾아가서 윌의 치료를 요청하게 됩니다.

숀 교수는 윌에게 심리학자의 입장이 아닌 한 영혼의 친구로 대해 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윌은 자신의 과거를 잘 드러내 놓지 않습니다. 어쩌면 자신의 과거를 드러내 놓는다는 것은 모든 자존심마저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윌은 모든 과거를 차단하고 철저한 방어벽을 쌓고 살아 왔던 것입니다.

그럴수록 윌은 과거에 어쩔 수 없이 끌려 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어느 누구에게도 정을 주지 않고 마음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어느 누구에게도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했고 자신에게 가까웠던 사람들, 아버지나 어머니까지도 다 떠나갔기 때문에 더 이상 어느 누구에게도 사랑을 주지 않으리라는 결심을 하고 살아 온 것입니다. 그래서 윌은 상처받지 않기 위해 어느 누구에게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윌은 그렇게 자폐적인 삶을 살아 왔던 것입니다.

그런 윌에게 숀은 그야말로 인간적으로 다가 갔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숀은 정성을 다해 보여 주었습니다. 조건 없이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모습까지도 보여 주었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아픈 과거까지 그대로 노출하면서 윌과 숀 교수 자신이 참으로 비슷한 배경까지 갖고 있다고 말하면서 친근감과 함께 아픈 마음을 깊이 공감해 줍니다.

 

숀교수는 윌에게 이런 말도 합니다.

너는 지식만 가지고 있지 참 경험을 하지 못한 어린 애에 불과해. 강한 아이지만 오만이 가득한 겁쟁이로 사랑을 두려워하고 있어! 사랑이란 다른 사람을 자기 자신보다도 더 믿을 수 있어야지 가능한 것이야! 다른 사람을 믿을 수 있어야지만 실패할 수도 있는 사랑 속에 자기 자신을 던질 수 있는 거란다. 진정한 삶의 경험은 바로 그러한 인간관계 속에 있는 거야!”

 

숀교수는 윌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을 때도 몇 시간이고 함께 침묵하면서 인내함으로 윌이 입을 열도록 기다려 줍니다. 그러한 숀 교수의 진실된 마음에 윌은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면서 친구같이 변해 갑니다.

그 와중에 여자 친구인 스카일라를 만나게 되고, 자신에게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 스카일라를 밀쳐 버리고 떠나게 됩니다. 아직까지 치유가 덜 된 윌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나 보이는 장면입니다. 지금까지 윌이 그렇게 살아 왔던 것입니다.

윌은 스카일라를 떠나 보냈던 것 같이 숀교수에게도 상처를 주고 떠나 버립니다.

어쩌면 이러한 과정이 마음을 열게 되면서 나타나는 두려움의 한 반응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변화에 저항하면서 마지막으로 나타나는 일종의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 날 동안 윌이 치료를 받으러 오지 않자 램보 교수는 숀을 원망합니다. 사실 램보교수는 윌이 자신의 수학 연구를 도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해 화가 나 있었던 것입니다. 치료가 늦어지는 것에 대한 불만도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램보 교수는 참으로 이기적인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상처를 치유하는 숀 교수와는 상당히 비교가 되는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살다보면 그렇기 이기적인 사람과 자신을 버리는 헌신적인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이기적인 사람과의 만남은 결코 오래가지도 못하고 그러한 사람을 통해 내 인생이 행복하게 변하지는 않게 됩니다. 오히려 문제만 남을 뿐인 것입니다.

그러나 숀 교수의 사랑을 바탕으로 한 헌신은 결국 윌을 감동시키기에 이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간은 누구나 다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지식이나 학문이 아니라 결국은 사랑이라는 것을 이 영화는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는 말씀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 사랑도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버릴 정도의 순수함이 있어야만 그 사랑이 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부간에도 보면 상대방을 변화시키려고 안간 힘을 다합니다. 특별히 아내들은 남편을 변화시키려는 사명감을 갖습니다. 그래서 잔소리도 하고 바가지도 긁습니다. 남편들은 아내를 변화시켜야 자신이 편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변화는 자신을 헌신하는 사랑이 있어야만 행복한 마무리가 따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목숨을 버리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는 그 마음이 필요합니다. 이기적인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상대방이 결코 변화되지도 않을 뿐더러 오히려 상처만을 남긴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영화 굿 윌헌팅에서 숀 교수의 헌신적 사랑을 보면서 그 사랑의 마음이 하나님 마음의 본질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3. 부정적 자기 암시의 비극

 

그런데 여러분!

그러한 숀 교수의 헌신적 사랑과 더불어 하나 더 생각해 볼만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정적 자기 암시가 얼마나 한 인생을 형편없이 만드는가 하는 점입니다.

윌은 그동안 끊임없이 나는 안 돼! 나는 어쩔 수 없이 안 되게 되어있다!”는 자기 암시 속에 살아 왔습니다. 자신의 비참한 인생이 결국은 자기 자신의 책임이라고 굳게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윌은 모든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체념해 왔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가 다 실수하면서 살아갑니다. 아무리 성숙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실수나 실패는 언제든지 경험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좌절이 다가올지도 모릅니다. 고통과 고난이 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인생의 어느 순간에서도 그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그 사람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마음을 지배하는 감정이나 가치관이 긍정적이라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갖게 될 것이고 그로인해 다시 일어설 수 있겠지만, 반대로 부정적인 가치관이나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은 그 마음으로 인해 스스로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긍정의 힘이라는 것이 그렇게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윌은 그동안 부정적 가치관이 그 마음을 지배했습니다. 그런데 그 잘못된 마음을 근본적으로 흔들어 버리고 새롭게 마음을 돌아 볼 수 있도록 만든 사람이 바로 숀 교수였던 것입니다.

부정의 마음이 가득한 윌에게 숀 교수가 그 억압과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소망을 던져 준 것입니다.

숀교수는 윌에게 양부의 폭행이 자신의 실수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 자체를 부정하려는 윌에게 숀교수는 사랑을 듬뿍 담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은 네 잘못이 아니야! It's not your Fault.”

나를 봐! 정면으로 쳐다 봐! Look at Me!”

무려 11번에 걸쳐 강하게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잘못된 부정적 감정에 직면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성질나게 하지 말라고 말하지만 갈수록 숀교수의 말은 윌의 마음을 뒤흔들어 버립니다.

결국 숀교수를 끌어안고 펑펑 우는 윌. 숀교수는 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끌어안아 줍니다. 억압된 감정이 터져 나오면서 이제 윌의 치료도 막바지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의 상처를 가지고 어린 아이처럼 울어버린 윌은 이제 새롭게 어른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어느 순간에 어린 시절의 시계에서 멈춰버렸던 성장이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가동하게 된 것입니다.

 

숀교수에 의해 치료를 받은 윌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익숙한 고향을 등지고 미래가 불확실하기는 하지만 새로운 인생에 도전하기로 하고 성장의 관계 속으로 차를 몰고 나가게 됩니다. 그 윌이 가는 곳은 자신을 사랑했지만 자신이 거절했던 여자 친구, 스카일라가 있는 캘리포니아였습니다.

치유받은 영혼은 이제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윌은 이제 홀로 설 수 있었습니다. 현실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가장 사랑받지 못한 자라고 스스로 생각했던 윌은 이제 스스로 사랑을 찾아서 먼 길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4. 사랑을 담은 행복한 멘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굿윌헌팅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좋은 사람과의 선한 만남이 한 영혼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물론 잘못된 만남은 인생을 파괴시킬 수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복된 만남, 좋은 만남을 가질 수 있기를 늘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들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자녀들이 좋은 선생님, 좋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해야만 합니다.

또한 우리 자신들이 좋은 만남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마음을 열어놓아야 합니다. 나로 인하여 한 사람의 영혼이 위로받고 치유받고 회복되도록 그래서 힘있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뿐입니까? 좋은 교회를 만나야 하고 좋은 영적 지도자를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왜 그렇게 기도해야 합니까? 그 만남이 인생의 질과 내용을 다르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교수 중의 한 사람인 하워드 헨드릭스의 이야기입니다. 달라스 신학교의 교수입니다만 핸드릭스 역시 어린 시절은 참으로 불행했습니다. 출생하기도 전에 부모가 이혼하면서 누구의 관심이나 보살핌도 받지를 못했습니다. 당연히 심한 정서적 불안이 핸드릭스를 감싸고 있었고 그래서 학교에서도 문제아로 자라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초등학교 3학년때 담임 선생님이 핸드릭스를 강제로 의자에 끌어 앉혀놓고 손발을 테이프로 묶었습니다. 입까지 테이프로 봉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하워드, 너는 이 학교에서 가장 못된 아이야!”라고 욕설을 퍼 부어 댔습니다.

그런 그에게 월트라는 주일학교 선생님을 만나면서 서서히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거기에다가 6학년때 아주 좋은 새 담임선생님을 만나면서 핸드릭스의 인생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6학년 담임선생님은 핸드릭스의 가정 환경을 알고는 오히려 사랑으로 감싸주고 격려까지 해 주었던 것입니다.

자타가 공인했던 문제아가 교회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복음을 전해 들었고, 또 사랑을 마음에 품게 되었으며, 훌륭한 멘토가 된 6학년 담임선생님의 사랑과 격려로 핸드릭스는 지금과 같은 대단한 인물로 성장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인생의 안내자, 스승, 모범이 되는 사람, 조언과 충고를 통해 바른 길로 이끌어 주는 사람, 영혼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형이나 누이같은 존재 등을 가리켜 멘토(Mentor)라고 말합니다. 그러한 멘토와 함께 하는 사람을 멘토리(mentoree)라고 부릅니다.

 

성경에서도 보면 모세와 여호수아의 관계가 대표적으로 멘토와 멘토리의 관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세의 지도력을 계승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갈 막중한 책임을 진 여호수아는 모세 가까이에서 그의 멘토링을 통해 지도자로서의 철저한 훈련을 받게 됩니다.

엘리야와 엘리사의 관계도 아주 좋은 멘토와 멘토리의 관계일 것입니다. 열왕기상 1919절에 보면 엘리야가 엘리사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서 밭을 갈고 있는 엘리사에게 자신의 겉옷을 던져주는 행동은 멘토로서의 엘리야의 주도적인 역할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과 디모데도 그러하고 바울과 바나바도 훌륭한 멘토와 멘토리의 관계입니다.

그보다도 가장 대표적인 멘토가 바로 예수님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멘토링 관계는 모든 멘토링의 모델과도 같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들 역시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멘토가 있다면 그같이 행복한 인생은 없을 것입니다. 미국 예일대학의 레빈슨 교수는 한 사람이 성인(成人)으로서의 성장 과정에 좋은 멘토를 갖지 못하는 것은 부모없이 자란 고아와 같은 불행이요 비극이라고 말하면서 멘토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물론 아버지가 멘토가 될 수 있고 어머니가 좋은 멘토가 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순간이든지 간에 자신의 인생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이끌어주는 그러한 사람이 우리에게 과연 존재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내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무슨 말을 하더라도 다 받아 줄 수 있고 나를 덮어줄 수 있는 그러한 멘토가 과연 존재하느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성경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골로새서 128절과 29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쉽게 설명하자면 이런 뜻입니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어느 누구에게나 그리스도를 전파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대로 최선을 다해 사람들을 가르치고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은 바로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한 자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되기 원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크리스천이라면 당연히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그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울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권면합니다. 첫째는 모든 크리스천들이 영적 멘토가 되라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덕이 되는 존재, 누군가를 일으켜 세워주고, 힘이 되어주는 그러한 존재가 되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만남을 영육간에 행복한 만남으로 만들어 갈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잘못된 만남은 없다는 겁니다. 문제는 그 안에서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만남이 부정적 만남일수도 있고 행복한 만남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만남이든지 간에 내가 그 만남을 그리스도 안에서 행복한 만남, 긍정적 만남으로 이끌어 가면 나로 인해 그 만남이 축복받는 만남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멘토가 되기를 원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게 되면 자연스럽게 우리는 상대방을 세우는 자로, 상대방에게 힘을 주는 자로, 용기와 격려를 주는 자로 서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나한테는 그러한 능력이 없습니다. 내가 오히려 도움을 받아야지요!”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멘토라는 것은 무엇을 많이 배워야 되는 것도 아니고 무슨 경험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들은 알게 모르게 이미 멘토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부모가 되었다는 것은 이미 자녀들의 멘토로서 살아가고 있음을 말합니다.

 

여러분! 멘토는 연령에 상관없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그 사람을 돌보려는 따뜻한 마음만 있으면 누구든지 가능합니다. 뿐만 아니라 완벽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도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부족하지만 사랑의 마음 때문에 멘토가 되는 것입니다.

더불어 멘토가 모든 해답을 다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문제 있는 것입니다. 또 멘토가 되기 위해 뭔가를 더 배워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삶의 인격적 교류를 통해 자연스럽게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멘토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오늘 본문 말씀에서 전하는 사명감을 갖지 못하고 그리스도 밖에서 내 생각대로 뭔가를 해 보려 하기 때문에 멘토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사랑만 있으면 되는데 우리가 그 사랑이 없기 때문에 제대로 된 멘토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 생각해 봐야 할 것은 멘토라는 것이 단지 누군가에게 도움만 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훌륭한 멘토가 되어지면 가장 은혜 받고 치유 받으며 행복해지는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굿윌헌팅에서의 숀 교수도 그러했습니다. 숀교수는 자신도 상처가 많았습니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그러한 문제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숀 교수는 최선을 다해 윌을 도왔습니다. 행복한 만남이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것입니다. 결국 숀 교수는 윌의 생명을 행복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혼까지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내가 좋은 멘토가 된다는 것은 내가 먼저 가장 은혜 받고 치유 받는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주는 것만큼 나는 그 이상의 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638절도 그렇게 말씀합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

 

여러분!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당연히 누군가의 멘토가 되어야 합니다. 아니 지금 나도 모르게 누군가의 멘토가 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꾸 주위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지금 나의 도움을 기다리는 손길은 없는가?”하고 말입니다. 히브리서 1215절도 그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돌아보아...”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내가 진정으로 그렇게 잘 도울 수 있을까요? 나도 지금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인데 그럴 수 있을까요? 내 코가 석자인데 어떻게 우리가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말입니까?

 

 

5. 내 영혼의 멘토는 누구인가?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내가 힘들고 연약할 때마다, 내가 부족함을 느낄 때마다 나도 멘토이지만 또 멘토링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할 필요가 생겨납니다. 그러니까 멘토의 최종 멘토로서 누군가 그 역할을 해 줄 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멘토 중의 멘토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알 바를 알지 못할 때 우리가 간구하면 성령께서 우리에게 갈 길을 알려주신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무엇이든 구하면 모든 것을 다 들어주신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러분! 지혜가 부족할 때, 내가 지금 어찌할 바를 모를 때 내가 언제든지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분, 바로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바로 내 영혼의 멘토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여!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우리가 주님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주님께서는 우리의 멘토가 되어 주셔서 우리를 도우시고 보살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혼의 평안을 얻게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힘드십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영적 멘토이신 주님을 찾으십시오!

그러면 됩니다.

그렇게 충전된 힘을 가지고 내가 또 다른 사람에게 멘토가 되어 주십시오.

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모든 것이 가능해 집니다. ‘굿윌헌팅에서 숀교수가 그러했던 것 같이 나도 부족하고 상처가 많은 존재이지만 완벽을 기다리지 말고 먼저 내가 사랑의 마음으로 사랑의 손길을 내미는 순간 그 관계 안에서 행복한 역사가 시작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위에는 같이 상처 때문에 상처에 묶여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들은 그 상처 때문에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당연히 하나님도 제대로 만날 수가 없습니다.

왜 그렇게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습니까? 그렇게 많이 배웠다는 사람들도 이단에 빠져듭니까?

그 이유는 그 마음 가운데 있는 어린 시절의 상처들 때문입니다. 사랑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했던 상처들, 가슴 속 깊이 새겨져 있는 알 수 없는 분노들... 그러한 좋지 못한 기억들이 그 사람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제대로 알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과거의 상처들이 그 사람들의 영적인 눈을 가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윌이 그러했던 것 같이 말입니다.

 

여러분! 심지어는 교회를 다닌다고 말하면서도 그러한 마음의 상처들이 남아있으면 하나님을 제대로 만날 리가 없습니다. 아무 일도 아닌데 상처를 받고 별일도 아닌데 분노를 표출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마음이 불쌍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굿윌헌팅이라는 영화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상처받은 영혼이 우리 주위에 참 많다는 사실과 함께 그렇게 상처받은 영혼을 누군가가 돌보지 아니하면, 사랑으로 감싸주지 아니하면 그 사람은 영원히 어두움 가운데서 자신의 능력이나 달란트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그러한 사람들을 자유케 해 주어야 할 의무와 사명이 바로 우리에게 있습니다.

다른 무기는 필요 없습니다. 단 하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이라는 무기를 들고 나아가면 됩니다. 사랑 하나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우리 성도들이 그렇게 주님이 주시는 사랑으로 무장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묶인 것으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해주는 복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