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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한 소문이 들렸다. 뒤주에 갇힌 사도 세자와 아버지 영조의 이야기를 영상화한 <사도>라는 영화가 뜨기 시작하면서 생긴 소문이다. 어머니들이 아이들과 함께 <사도>라는 영화를 보기 위해 길게 줄을 서는데, 그 이유가 부모 말을 안 듣고 놀기만 하면 뒤주에 갇히게 된다는 것을 교훈하기 위해서라는 것과 뒤주같이 생긴 방을 만들어 동의하에 나오지 못하게 자물쇠로 채우고 공부만 하게 한다는 소문이었다. 

기성세대가 신세대를 궤짝에 가두려 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계속되는 것 같다. 사울도 다윗을 자신의 갑옷에 가두려 했다. 다윗에게 사울의 갑옷은 자물쇠 달린 궤짝이었다. 

골리앗을 대적할 자가 없어 고심하고 있을 때 마침 골리앗과 싸우겠다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다급한 마음에 일단 불러 놓고 보니 사울 앞에 선 다윗은 골리앗을 대적할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다윗이 아직 어린아이 티를 벗지 못한 소년이었기 때문이다. 사울왕은 다윗의 출전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윗의 끈질긴 설득에 결국 다윗이 전쟁터로 나가 골리앗과 싸울 것을 허락한다. 사울 왕은 다윗의 머리에 자신의 놋 투구를 씌우고 자신의 갑옷을 입혔다(삼상17:38). 그래야 그나마 안심이 될 것 같았다. 그래야만 다윗이 험난한 싸움에서 보호받고 이길 것 같았다. 그는 단순히 신념을 확신했다. 

사울왕은 그 시대의 리더였다. 어찌 보면 다윗에게 자신의 갑옷을 입히려 한 행위는 그의 리더십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 여러 리더십 유형 중에 사울왕이 갖고 있던 리더십은 ‘카리스마 리더십’에 가까웠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선지자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을 받아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 되었으므로(삼상(10:24), 자신이 초자연적인 속성이나 예외적인 신의 은총, 능력을 부여받았다고 생각했다. 또한 다윗을 두둔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아들 요나단에게 단창을 던졌고(삼상 20:33), 금식하라는 자신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쟁 중에 큰 승리를 이룬 요나단을 죽이려고 했다(삼상 14:44). 자식에게까지 철저한 순종을 요구한 지배적이고 권위적인 왕이 사울이었다. 

그는 영향력 행사에 대한 강한 욕구가 있었고, 부하는 리더가 수용한 목표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부하나 백성에게 자신에 대한 애정과 복종심, 그리고 자신과 철저히 일치할 것을 요구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카리스마가 대중에게 인정받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전쟁터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날 여인들이 소고치고 춤추며 자신에게는 천천을 돌리고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렸을 때 그의 심기가 뒤틀릴 수밖에 없었다. 

사울에게 갑옷은 그의 신념과 권위였고 관습이었으며 가치관이자 교육철학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울은 거구였다. 다른 사람보다 어깨 위만큼 컸다(삼상10:23). 그러니 그냥 보기에도 소년인 다윗에게 자신의 갑옷이 맞지 않을 것이라는 것쯤은 짐작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다윗에게 잘 맞지 않는 자신의 갑옷을 입히려 했다. 자신과의 일체성을 다윗에게 강요한 것이다. 사울에게는 익숙한 일이었다. 

다윗은 사울에게 익숙한 그것에 길들여지기를 거부했다. 그래서 사울에게 “익숙하지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삼상 17:39)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다윗에게 익숙한 것은 목동의 옷이었다. 다윗은 목동의 옷을 선택했다. 자신의 신념이 거절당한 사울은 아마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울은 이 전쟁에서 지면 자신의 카리스마가 대중에게 인정받지 못하게 될 것을 염려했다. 그런 사울의 영향력 행사에 대한 강한 욕구가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러 나가도록 허락했다. 

사울의 갑옷은 지금도 존재한다. 교회에서도,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여전히 견고하게 기세를 부린다. 무엇이든 나로부터 나온 것만이 최선이라는 주장이다. 다음 세대가 나와 일체가 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논리가 여전하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자신의 갑옷을 입히려 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아이들과의 소통은 단절될 것이고 미래에 거부당하는 존재가 될 것을 각오해야 한다. 지금은 오히려 사울이 자신의 갑옷을 벗고 아랫사람에게 배우는 역멘토링에까지 익숙해져야 하는 시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