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자 2015.01.21 14:05:35

 

씨 뿌리는 삶

누가복음 8:4-8 *갈라디아서 6:6-10

[8:4-8] 각 동네 사람들이 예수께로 나아와 큰 무리를 이루니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되 5 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버렸고 6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싹이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6:6-10]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small.jpg

1. 새로운 시각으로 쳐다 본 씨 뿌리는 비유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의 공관복음에 다 나오는 씨 뿌리는 비유는 제가 내적치유 강의를 할 때 그 출발이자 마지막 결론에 해당하는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동안 주로 네 가지의 마음 밭, 그러니까 우리들의 마음을 돌밭의 마음, 길가의 마음, 가시떨기의 마음, 옥토의 마음 각각에 대해 그 특징과 그 마음 밭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 등에 집중하여 살펴 본 바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완전히 색다른 묵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마 제가 수백 번도 더 읽었을 이 본문 말씀이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제게 다가온 것입니다. 오늘은 그 말씀을 함께 나누려 합니다.

 

저는 먼저 5절의 씨 뿌리는 자에 집중했습니다. 그동안 그 씨 뿌리는 자가 농부라는 시각에 고정되어 있었는데 제가 새롭게 눈을 뜬 것은 그 씨 뿌리는 자의 주체가 하나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그렇게 씨 뿌리는 주체를 다르게 생각하고 나니까 저에게는 많은 깨달음이 몰려 왔습니다. 이스라엘의 자연환경, 특별히 농사짓는 환경은 별로 좋지 않습니다. 지형적으로 돌이 많기 때문에 우선 돌을 골라 낸 다음 씨를 흩어 뿌려 농사를 짓는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까 농부가 뿌린 씨들이 씨를 뿌리려 경작한 땅뿐만 아니라 돌무더기 위에도 떨어지고 길에도 흩어지곤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저는 길가나 돌밭,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는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고, 혹시 그런 마음 밭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옥토의 마음으로 치유해야 한다는데 초점을 맞추었던 것입니다. 그래야 100, 60, 30배의 결실을 맺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동안 제가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기도 합니다만 농부가 씨를 뿌릴 때 옥토위에만 정성스럽게 뿌린 것이 아니라 수확이 없을 것이 거의 확실한 길가, 돌밭, 가시떨기 밭에도 씨를 뿌렸다는 것입니다.

쉽게 생각하면 그건 낭비헛된 일이라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그러한 밭에 농부는 씨를 뿌렸다는 것입니다.

비록 열매를 맺지 못할지라도,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할지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농부는, 하나님은 씨를 뿌렸다는 것입니다. 그 순간 저의 마음에 엄청난 충격으로 새로운 시각이 열리면서 저의 교만한 마음이 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성경을 읽을 때 이런 비유의 말씀이 나오면 상당수의 사람들이 그 비유의 대상에 본인이 들어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떠올리면서 , K집사 같은 사람에게 딱 맞는 말이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그 비유에서 본인은 비껴 서 있습니다. ‘나는 길가의 마음, 돌밭의 마음, 가시떨기의 마음과는 관계없는 옥토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라고 생각하거나 그저 제3자의 마음, 관중의 입장에서 비유를 살펴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말씀을 묵상하면서 느낀 것은 제가 바로 길가와 돌밭과 가시떨기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지금 당장은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을 아시면서도 결코 나를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미래의 소망으로 씨를 뿌리셨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씨앗이 자라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그럴 가능성도 별로 없지만, 그래서 지금 뿌리는 이 씨가 낭비적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끊임없이 말씀의 씨를 뿌리시면서 장차다가 올 수확을 기대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 생각에 미치는 순간, 하나님의 한량없는 사랑의 마음이 제게 다가왔습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저도 씨를 뿌리면서 , 저 사람은 소망이 없다. 저런 사람에게 내 시간을 내어 준다는 것은 낭비다라고 생각하는 경우들이 얼마나 많았던가를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이게 교만이지요. 이게 개구리가 올챙이 적 모른다는 말이지요.

하나님이 나에게, 우리에게 보여준 그 모습대로 그저 묵묵히 씨를 뿌렸어야 하는데 내가 스스로 판단하고, 전지가위로 가지를 치는 어리석은 삶을 살아왔던 것입니다.

 

설교를 하면서도 나름대로 판단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내 나름대로 이렇게 저렇게 판단하는 경우들이 얼마나 많았던가를 깊이 회개하게 된 것입니다.

마태복음 1337절과 38절 상반 절을 봅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38)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여기서 밭은 세상이라 했습니다. 그 밭에 씨를 뿌리는 이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밭의 형태, 상태에 대해 함부로 거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저 소망을 가지고 뿌리라는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38절을 보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을 좋은 씨라 했습니다. 그 자녀들을 세상에 또 뿌린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씨를 심는 자로 세상 가운데로 보낸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자녀가 좋은 씨인가, ‘가라지인가의 판단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비록 우리 눈에는 가라지같은 존재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좋은 씨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나보다 남을 낫게여기면서 서로를 선하게 대하라는 것입니다. “소망이 있는 씨로 마주하라는 것입니다.

그 말은 우리 스스로에 대해 생각할 때도 좋은 씨라 여기라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가라지라고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씨를 뿌리는 자의 입장에 있을 때도 그 밭의 상태를 스스로 판단하여 마음대로 결정해서는 안 되고, 내가 하나님이 뿌려주신 의 입장에 섰을 때도 자신의 씨 뿐만이 아니라 주위의 씨에 대해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저의 첫 번째 깨달음이었습니다.

 

2. 하나님의 농사법칙

두 번째로는 씨 뿌리는 자의 자세에 대한 깨달음이었습니다.

어디에 씨를 뿌릴 것인가? 어떻게 씨를 뿌릴 것인가? 무엇을 뿌릴 것인가?

그런데 그 해답을 갈라디아서 66절로부터 10절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함께 보겠습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하나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 할지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이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씨를 뿌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씨를 뿌리는 것이요 말을 한다는 것도 사업을 하는 것도 다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물론 그 씨가 좋은 씨일 수도 있고 좋지 못한 씨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아무 의미 없는 씨를 뿌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래 주신 종자는 좋았는데, 그 좋은 종자에게서 좋은 씨만 또 생산되는 것이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칩니다. 무엇을 심든지 간에 심는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심었느냐에 따라 뿌린 대로 거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끔은 가면을 쓰고 좋은 씨를 뿌린 척 했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스스로 속인다고 해도 반드시 뿌린 대로 열매를 거두고야 말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뿌린대로 열매를 거둔다는 것은 아무리 본성이 좋은 씨일지라도 무엇을 위해 씨를 뿌렸는가, 어느 곳에 씨를 뿌렸는가에 따라, 다시 말해서 씨를 뿌리는 자의 자세나 태도에 따라 좋은 열매를 맺히게 할 수도 있고 나쁜 열매가 맺히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성령을 위해 씨를 뿌리고 심으라고 말씀합니다. 육체의 소욕을 버리고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삶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목표를 분명히 하고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때에 따라서는 좋은 씨를 뿌렸음에도 불구하고 바란 만큼 열매가 맺히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인내로서 기다리면 때가 이르러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잊어버려도 하나님은 결코 잊지 않으시고 선한 열매를 맺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농사법칙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오늘 하루, 지난 한 주간을 사시면서 어떤 씨앗을 뿌리셨습니까? 무엇을 위해 씨를 뿌리셨습니까? 무엇을 바라보며 씨를 뿌리셨습니까? 어디에, 그러니까 누구에게 씨를 뿌리셨습니까?

갈리디아서에서는 우리 주위의 모든 사람들, 특별히 믿음의 가정에 선한 씨앗을 뿌려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여러분은 여러분의 믿음의 가정, 다시 말해서 가족들에게, 그리고 우리 주위의 사람들에게 어떤 씨를 뿌렸느냐는 것입니다.

저 사람에게 씨를 뿌릴 것인가, 말 것인가 판단하지 말고, 내 맘에 들지 않는다고 가리지 말고 갈라디아서 610절 말씀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이에게 선한 일을, 선한 씨앗을 뿌리라는 것입니다.

어떤 말의 씨를 뿌렸으며 어떤 생각의 씨, 행동의 씨, 삶의 씨를 뿌렸느냐는 것입니다. 선한 씨앗이었습니까? 아니면 독이 가득한 씨였습니까? 생명을 살리는 씨앗이었습니까? 아니면 저주와 비난과 비판 같은 악독이 가득한 씨였습니까?

 

3. 비록 기근이 있을지라도...

 

어떤 분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내 코가 석자라서...”.

또 어떤 분들은 말합니다.

도저히 상황이 좋지 않아서...”,

내가 저런 사람들에게도 선한 일을 해야만 합니까?”

그런데 여러분, 내가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그 환경에 지배당해서는 안됩니다. 그 어려운 환경으로 인해 씨 뿌리는 일을 중단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내가 이웃들에게 뭔가를 베풀 상황이 전혀 아닐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한 씨를 뿌려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내 눈에 보이는 땅이 아무리 척박하다 할지라도, 그래서 씨를 뿌리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망을 가지고 씨를 뿌려야 합니다. 나는 그저 씨를 뿌릴 뿐,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창세기 26장을 보면 가나안땅에 엄청난 기근이 닥쳤는데 그 가운데 이삭이 행한 행동을 보면 많은 것을 깨닫게 합니다.

애굽으로 내려가려던 이삭에게 하나님은 그냥 그곳에 머무르라고 말씀합니다.

지금 지독한 기근이 가득한 가나안의 그랄 땅에 이삭은 씨를 뿌립니다. 그저 복 주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만 믿고 그 기근의 땅에 씨를 뿌립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12절을 봅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여러분,

지금 우리에게 영적 기근, 정신적 기근, 육체적 기근이 닥쳐와 있다 할지라도, 지금 내 눈에 그저 삭막한 환경만 보인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잡고 의지하면서 선한 씨를 뿌리라는 것입니다. 주위를 보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묵묵히 씨를 뿌리라는 것입니다.

복을 거두고 싶다면 복의 씨를 뿌리라는 것입니다. 행복의 열매를 거두고 싶다면 행복의 씨앗을 뿌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심는 대로 거두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어려움 가운데 처해 있을지라도 내가 처해 있는 바로 그곳이 하나님의 씨를 뿌려야 할 장소임을 깨닫고 그저 묵묵히 씨를 뿌리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주위에 사막같은 환경이 펼쳐져 있다 할지라도, 가뭄의 땅이라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의 씨를 뿌리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으로 계산하고 판단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 그저 묵묵히 씨를 뿌리라는 것입니다.

 

잠언 1124절과 25절의 말씀에도 보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줍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25)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 지리라

쉽게 설명 드리자면 남에게 후하게 나누어 주는데도 더욱 부유해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마땅히 쓸 것까지, 당연한 것마저도 아끼는데도 불구하고 더 가난해지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부유해지고 남에게 마실 물을 주면 자신도 그 갈증을 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있는 사람은 그 소유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알고 덕을 베풀어야 하는 것이고 혹시 지금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을지라도 이웃들에게 선을 베풀라는 말씀입니다.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는 누가복음 638절의 말씀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베푼 만큼 나에게 돌아온다는 하나님의 법칙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씨를 뿌리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수확을 바랄 수 없다는 것입니다.

 

4. 날마다 복의 씨를 뿌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날마다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던 간에 우리 주위의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무엇인가의 씨를 뿌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내 마음이 어떠하고, 그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영이 살아 역사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우리의 꿈과 비전과 목표가 어떠하냐에 따라 뿌려지는 씨앗의 종류, 모양들이 다 다를 것입니다. 뿌려지는 그 씨로 말미암아 주위 사람들에게 빛을 줄 수도 있고 어두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한사람을 실족시킬 수도 있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생명을 줄 수도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아주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고린도후서 82절을 보면 환난의 많은 시련가운데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냥 주저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고후 8:2)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그 어려움 가운데서도 씨를 뿌렸습니다. 그 극심한 가난 가운데서도 연보는 넘칠 정도로 풍성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분명한 확신과 소명이 있었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씨를 뿌렸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스스로에 대해 하나님이 직접 뿌려주신 좋은 씨라고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 번 따라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하나님이 직접 뿌리신 좋은 씨이다.”

 

내가 그렇게 좋은 씨라는 것은 옆에 있는 사람들도 역시 하나님이 직접 뿌려주신 좋은 씨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옆에 있는 분들에게도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직접 이 땅에 보내신 정말 좋은 씨인줄 믿습니다.”

 

그렇게 스스로에 대해, 이웃에 대해 좋은 씨라는 확신을 가질 때 비로소 좋은 씨를 재생산 할 수 있고, 또 그 밭에서 좋은 열매가 나오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보내신 좋은 씨인 여러분!

 

하나님이 직접 보내신 좋은 씨답게 날마다 복의 씨를 뿌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직접 보내신 좋은 씨답게 가족들에게, 이웃들에게 행복한 말의 씨, 사랑이 가득한 행복한 씨앗을 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직접 보내신 좋은 씨답게 내가 가진 것이 비록 없을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선한 씨앗을 베푸는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굽이쳐 흐르는 강물이 되길 원하시지 그 모든 물들을 가두어 놓는 저수지가 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복의 근원이 되고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이제부터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어 봅시다. 받는 삶이 아니라 주는 삶으로 바꿉시다.

 

조엘 오스틴 목사는 그가 쓴 책 긍정의 힘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복을 받을 수 있을까라는 태도를 버리고 어떻게 은혜를 베풀 수 있을까라는 태도를 기르라고 말입니다.

저도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베풀고 삽시다. 복의 씨를, 사랑의 씨를, 복음의 씨를 뿌리는 삶을 살아갑시다.

하나님이 직접 보내신 좋은 씨답게 날마다 나로 인하여 세상이 밝아지고 주위가 행복해진다면 그것보다 더한 기쁨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직접 보내신 좋은 씨답게 나로 인해 나의 남편이, 나의 아내가 행복해하고 우리의 이웃들이 소망을 얻고 기쁨을 얻는다면 그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오늘 하루 깊이 묵상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어떠한 씨를 뿌리기를 원하시는지 말입니다. 베푸는 삶, 복의 씨를 만방에 뿌리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아들, 딸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추부길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