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자 2014.11.17 17:40:55

한밤중에....

사도행전 16:19-26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 갔다가 20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21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22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23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24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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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밤중에...

 

사람이 살다보면 누구든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 힘들고 어려운 일 때문에 어떤 이는 죽음을 생각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그 순건 무너져 버리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캄캄한 어두움이 그 사람을 감싸고 있는 것이지요. 아무 소망도 없을 듯한 빛 한 점 없는 그 적막한 어둠은 우리를 두려움에 빠지게 만들기도 하고 우리의 마음을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안개 가득한 심연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가족 중의 한 사람이 병원에서 진찰을 받았는데 검사 결과가 좋지 않는데요..." 라는 말을 듣는 순간, 그 때부터 캄캄한 밤이 그 가족을 감싸게 됩니다. ”한밤중이지요. 분명히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승진도 되고, 이것도, 저것도 다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모든 일들이 좌절되었을 때 우리는 한밤중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7절에서 66절에 보면 제사장 사가랴가 제사장 직무를 수행하러 성전에 들어갔다가 갑자기 벙어리가 됩니다. 사가랴는 이때부터 요한이 태어날 때까지 캄캄한 어둠, 한밤중을 경험합니다. 사가랴에게 닥친 신앙의 위기이지요.

예수님과 함께 갈릴리 바다를 건너던 순간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4:37a) 된 순간이 바로 한밤중이었습니다. 영적심리적 한밤중이었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한밤중의 순간이 자신이 전혀 예측하지 못한 그 때에 홀연히 다가온다는 점입니다. 그것도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로 인한 한밤중일수도 있고, 자신의 잘못과는 전혀 무관하게도 다가 올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사도 바울이 하루는 기도하는 곳으로 가다가 한 여종을 만나게 되는데, 그 여종에게 귀신들린 것을 알고 사도바울이 불쌍히 여겨 그 귀신을 쫓아내 줍니다. 문제는 그 여종의 주인들이 그 여종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고 있었는데 그 여종에게서 귀신이 떠나감으로써 자신들의 사업에 지장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바울과 실라를 우격다짐으로 붙잡아 법정으로 끌고 가 유대인 선동자로 고발당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느 새 고발을 한 사람들과 시민들이 한 패가 되어 무리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판사들이 그 폭도들과 한 편이 되어 바울과 실라의 옷을 찢고 공개 태형을 명령하게 됩니다(22). 그들은 시퍼런 멍이 들도록 때린 뒤에 중죄인을 가두는 지하 감옥에 가두고, 탈출하지 못하도록 발에 족쇄를 채우고 삼엄하게 감시합니다.

지금 바울과 실라가 자신의 잘못과는 전혀 무관하게 탐욕이 가득한 사람들로 인해 한밤중을 맞이하게 됩니다. 시련이 찾아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과 실라도 그러했지만 사람은 누구나 여러 가지 이유로 영적, 정신적, 육체적 어두움의 순간인 한밤중을 경험하게 됩니다. 한밤중에 어떤 이는 낙담할 수도 있고 어떤 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가올 새벽을 기다리며 참고 인내하며 이겨낼 수도 있습니다.

 

2. ‘한밤중에 거할지라도...

 

올 여름, 엄청난 바람이 한반도에 몰아쳤습니다. 수많은 나무들이 폭풍으로 인해 뿌리가 뽑힌 채 넘어졌습니다. 대부분 뿌리가 깊지 않은 나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참나무들은 적당한 폭풍이 불어주어야지만 뿌리가 깊이 내리게 된다고 합니다. 폭풍이 불어오게 되면 참나무는 불어오는 바람을 이겨내기 위해 본능적으로 뿌리를 더 깊이 내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보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추운 겨울을 뚫고 보리 싹이 올라왔을 때 그 싹을 그대로 두면 겨우 80알 정도만 수확할 수 있지만 싹이 올라오는 것을 발로 밟아서 싹을 꺾어 버리면 나중에 나오는 싹은 더 강해지면서 그전보다 5배 이상의 수확을 올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람이 불고 내 뜻과는 달리 싹이 밟히는 일들이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뿌리가 더 깊이 내리고 또 더 많은 수확을 내려는 하나님의 의도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심동철이라는 분이 쓴 인생김치 이야기에도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어린 배추는 차가운 비바람을 견뎌야 깊은 맛의 배추로 성장할 수 있다. 배추가 소금에 절여지지 않으면 제대로 된 양념을 입힐 수 없다. 김치의 맛은 소금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김치가 곰삭은 맛을 내기 위해서는 발효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습니다. 깊은 맛이 있는 배추가 되려면 차가운 비바람을 견뎌내야 합니다. 차가운 비바람이 세차게 부는 그 순간이 바로 한밤중이지만 그 어두움의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 것입니다. 소금에 절여지는 그 순간, 배추 원래의 모습을 다 포기해야 하는 그 순간이 바로 한밤중의 순간입니다. 어쩌면 그 이전에 땅 속에 묻혀 있던 배추 포기가 뽑혀지는 그 순간이 한밤중일 수 있고, 김장을 담그기 위해 뿌리가 싹뚝 잘려지는 그 순간이 바로 한밤중일지도 모릅니다.

그 통통한 배추가 2등분, 4등분으로 잘려나가는 그 순간이 바로 한밤중일 것이고 자신을 알록달록하게 양념이 입혀지는 그 순간, 빛이 들어오지 않는 옹기속에서 발효되고 있는 그 순간이 바로 깊은 한밤중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얼마 전에 영상앨범 산이라는 TV프로그램을 아주 감동적으로 본 적이 있었는데 중간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거칠고 험한 산길 같은 과정이 있었지만 그 마저도 소중한 인생의 과정이었다.”살다보면 사람 힘으로 안 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시나브로 걷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그 프로그램은 국내외의 유명한 산을 등산하면서 소개하는 것이었는데 특별히 산에 올랐을 때 깊은 안개가 눈앞을 가리는 그 순간을 생각하며 하는 멘트였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어쩌면 내 힘으로는, 내 생각으로는 도저히 헤쳐 나갈 방법이 없는 그 한밤중의 순간, 그때가 바로 곰삭은 김치가 되기 위해 어두움 속에서 발효되고 있는 순간이 아닐까요?

앞서 소개했던 인생김치 이야기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너는 아직 상위로 올라 갈 때가 아니다. 좀 더 기다려라. 엄동설한이 오면 네 것을 꺼내 쓸 것이니....”

이 책에도 그런 내용이 나옵니다만 하나님이 사람을 쓸 때는 썩은 물을 완전히 들어낼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것입니다. 야곱도 20년간의 쓰라린 기다림을 겪었고 요셉은 13년 동안의 모함과 억울한 옥살이 끝에 쓰임 받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의 삶이 캄캄한 어두움 가운데 임함으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밤새도록 일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우리 가운데 한밤중이 다가오는 그 순간에 하나님의 손길을 붙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미새 한 마리가 알을 낳기 위해 나뭇가지 위에 둥지를 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나뭇가지의 아래 부분은 이미 썩어 있어서 그 나뭇가지에 둥지를 틀게 되면 나뭇가지가 부러지면서 그 둥지가 산산조각이 날 가능성이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농부는 어미 새가 힘들게 지어놓은 둥지를 헐어버렸습니다. 그 농부의 마음도 모른 채 어미 새는 그 나뭇가지에 또 둥지를 틉니다. 그러면 농부가 또 헐어버립니다. 어미 새는 그렇게 고생해서 만든 둥지가 헐리는 것을 보면서 낙담했을지도 모릅니다. 왜 이렇게 고난이 계속되는가 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어미 새는 자신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또 둥지를 튼 것입니다.

그러기를 여러 차례 겪고 나더니 어미 새는 그 나뭇가지에 둥지 트는 것을 포기하고 드디어 다른 나뭇가지에 둥지를 틀기 시작합니다. 그 모습을 본 농부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안심합니다.

어미새는 참으로 알 수 없는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어미 새에게 닥쳐온 어려움에 대해 설명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은, 그 시련은 어미 새와 그 어미 새의 알을 통해 부화될 새끼 새를 진정으로 염려하는 농부의 사려 깊은 행동으로 인해 생겨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시련이나 어려움, 고난이 다가올 수 있습니다. 전혀 뜻모를 고난이나 시련이 우리 앞에 놓여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어미 새를 진정으로 생각하는 농부의 손길이라면, 참으로 우리들의 미래를 염려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라면 감사하게 받아 들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아무리 험한 한 밤중이라 할지라도 당연히 하나님의 손을 잡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대개 보면 믿음이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는 시련이나 고난, 그러니까 한밤중이 닥쳐왔을 때 대처해 나가는 방법이 당연히 다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지금은 비록 한밤중이지만 동트는 새벽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알고 인내로 이겨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인격적인 신뢰인 것입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스 루케이도가 쓴 일용할 양식이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영국 웨스트 스텐리의 한 마을에서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광산이 붕괴되는 바람에 갱도 안에서 일하던 수많은 광부가 매몰되어 숨졌습니다. 당시에 지역 주교였던 핸들리 모울은 슬픔에 빠진 가족들을 위로하는 말씀을 전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주교는 갱도 입구에 서서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끔찍한 재앙을 허락하신 까닭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분을 신뢰하며, 모든 일이 선하게 마무리 될 것을 믿습니다.”

그는 흥미로운 비유로 설명을 이어 갔습니다.

집안에 어머니가 물려주신 오래된 책갈피가 하나 있습니다. 비단으로 만든 화려한 물건이지만 안팎의 모습은 전혀 다릅니다. 안에는 온갖 매듭과 실이 이리저리 얽히고 설켜 있는 모습만 눈에 띕니다. 마치 큰 실수를 저지르고 수습하지 못한 자리처럼 보이지요. 안쪽만 본 사람은 자수의 기본도 모르는 초보자가 아무렇게나 바느질 해 놓은 것이 아닌가 생각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뒤집어보면 아름답게 수놓은 글자가 보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위로의 메시지는 계속되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책갈피의 안쪽만 보고 있습니다. 언젠가 완성품 쪽을 보고 모든 상황을 이해하게 될 날이 반드시 올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느 누구도 고난을, 시련을, ‘한밤중의 순간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가장 훌륭한 삶은 그런 한밤중의 순간이 우리에게 닥칠지라도 그 순간에 하나님의 손을 붙잡을 수 있어야 하고, 그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알고 깨닫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힘으로는 그 한밤중의 시련을 이겨낼 수 없을 것이기에 하나님의 손을 굳건히 붙잡고 그 힘으로 이겨나가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저도 캄캄한 한밤중의 순간을 맞이하였을 때, 특별히 좌절이 계속되는 그 때에 하나님의 손을 잡지 않았다면 정말 제 육신이 어찌 되었을지 짐작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한밤중의 때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손을 굳게 붙잡았습니다. “절대 놓치지 않으리라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어떨 때는 다 놓고 싶을 때,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럴수록 또다시 제 마음을 다 잡았습니다.

이 모든 시련들, 고난들, ‘한밤중의 때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더 알아갈 수 있고,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깨달을 수 있을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실라도 험한 꼴을 당하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 한밤중의 때에, 그것도 시간까지 한밤중인 때에 하나님의 손을 굳게 잡았습니다.

본문 25절을 봅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바울과 실라는 그 한밤중에 좌절한 것이 아니라 우선 기도했고 또 하나님을 찬양했다고 성경은 적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손을 굳게 잡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기도했고, 찬양했다는 것입니다. ‘한밤중에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한밤중의 순간을 당할 때 가져야 하는 자세인 것입니다.

그것은 한밤중의 때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몰고 오실 새벽의 때를 위한 기다림과 인내, 그리고 성장과 발효를 위한 때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시편 102편에도 보면 위기를 만났을 때 부르짖음으로 하나님께 간구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시편 1022절입니다.

나의 괴로운 날에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내가 부르짖는 날에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여기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다는 것은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신앙고백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응답을 확신하면서 기다리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님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자신감을 얻게 되고 그리고 하나님이 움직이셔서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도바울도 보세요. 그렇게 기도했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26절입니다.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매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하나님께서 어두움을 몰아내시는 새벽이 다가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움직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강한 팔이 바울과 실라를 구원해 내신 것입니다.

 

4. 새벽이 다가올 것이기에...

 

사랑하는 여러분!

질풍지경초(疾風知勁草)’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찬 바람이 불어야 비로소 강한 풀을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깊은 어두움을 경험할수록 의지도 그만큼 강해지는 것입니다. 어떠한 고난이 닥칠지라도 어떠한 한밤중의 위기가 닥칠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인내하면서 끝까지 이겨내면 반드시 하나님이 주시는 엄청난 복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희망특강 파랑새라는 프로그램에서 문화재 복원 전문가 신응수 대목장편을 방송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나무를 보면 가끔 옹이를 볼 수 있습니다. 옹이는 나무에게 닥친 시련과 고난의 흔적입니다. 우리들은 흔히들 옹이가 있는 나무를 좋지 않은 나무고 평가합니다만 신응수 대목장의 설명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옹이가 있는 나무가 정말 좋은 나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무가 100, 200년이 지나면서 어쩔 수 없이 나무가 갈라지게 되는데 그 갈라지는 것을 옹이가 막아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오래가야 할 집을 지으려면 옹이가 있는 나무를 골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요? 우리에게 한밤중으로 인해 생긴 옹이가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가려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해주지 않을까요? 오히려 옹이로 인해 우리가 하나님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어떤 분이 김수환 추기경에게 사람한테 고통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라고 물었더니

몸은 자라고 마음은 자라지 않는 식물인간이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고통은, 고난은, ‘한밤중의 시간은 우리의 영혼을 성숙시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나를 쓰러뜨린다.’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저도 그야말로 한밤중의 순간에 처해 있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때, 한밤중의 때에 다가올 새벽을 기대하며 하나님의 손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그러했듯이 말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저의 생각대로, 뜻대로 비록 이루어지지 않을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저와 함께 하시며 저를 붙드시는, 그리고 저를 위해 한밤중에도 일하시는 하나님을 분명히 믿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 가운데도 지금 저와 같이 한밤중에 처해 있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그러한 한밤중의 때가 다가올 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그렇게 한밤중을 대하게 될 때 닉 부이치치를 기억하십시오.

태어날 때부터 팔, 다리가 제대로 붙어있지 않았던 닉 부이치치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 다리가 없는 그가 다시 일어나기를 시도하면서 했던 말을 꼭 기억하십시오.

살다보면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없다고 느낄 때도 있을 것입니다. 저를 보세요. 팔과 다리가 없는 저는 지금 넘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희망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다시 일어서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정말로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백번이라도 일어나려고 시도할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그는 다시 일어났습니다. 그는 지금도 오직 하나님의 손을 붙들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참으로 어마어마한 시련이 그를 감쌌지만 그 한밤중의 시련을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이겨 내었습니다. 그리고 당당하게 일어선 것입니다 .

 

여러분!

밤이 깊을수록 새벽은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 새벽을 기대하며 비록 한밤중에 처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손을 더욱 굳게 붙잡는 하나님의 사람들 다 되실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