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자 2014.07.25 21:15:58

 

끊으라! 비우라! 채우라!’

- 소유나 존재냐(2) -

 

* 마태복음 6:16-18 *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17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18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 마가복음 2:27-28 *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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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금식을 하십니까?

 

한 번은 제가 상당히 큰 교회의 신년금식성회에 주강사로 초청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초청을 받고 나서 막상 고민한 것은 금식성회이니 강사인 저도 같이 금식해야 하는가하는 점이었습니다. 저는 사실 금식에 상당히 약합니다. 하루 한끼 금식이야 많이 해봤지만 40일 금식은 엄두도 못내고 3일 금식이 최장기록일 정도로 금식하는 것에는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1231일 오후에 기도원에 도착했을 때 제일 먼저 물어본 말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저도 금식해야 합니까?” 그랬더니 그 교회 목사님이 무슨 소리입니까? 강사님은 식사를 잘 하셔야 은혜로운 말씀을 힘껏 전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금식해도 강사님은 잘 드셔야죠.” 그래서 제가 또 물었습니다. “어떻게 저 혼자만 식사를 할 수 있습니까?” 그랬더니 담임목사님은 이렇게 답변을 했습니다. “, 강사님을 접대하는 팀이 있는데요, 혼자 드시기는 뭐 하니까 강사 접대팀은 강사님과 함께 식사를 합니다. 염려 마십시오.”

나중에 보니까 강사 접대팀은 대부분 장로님들로 10여명이 넘었는데, 신년 금식성회에 올 때 이 강사 접대팀에 서로 들어가려고 경쟁이 치열했다고 합니다.

하여튼 3일 내내 금식하고 있는 1,000명의 성도들 앞에서 밥 잘 먹은 제가 강단에 서서 설교하면서 상당히 멋쩍어 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한국교회 같이 금식 잘하는 교회도 이 지구상에 없을 것입니다. 기도원 가운데는 아예 금식만 전문으로 하는 곳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금식을 하시는 성도님들께 왜 금식을 하십니까?”라고 물어보면 대부분이 간절히 기도하기 위해서”,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서 기도에 전념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하십니다. 참으로 대단한 열정입니다. 아마 그러한 기도의 열정들, 그러한 기도의 씨앗들이 있었기에 그래도 한국 교회가 지금 만큼이라도 서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금식기도하시는 분들이 금식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좀 더 깨우친다면 정말 은혜가 넘치는 복된 시간이 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은 바로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2. 참된 금식이란?

 

금식의 역사는 참 깊습니다. 초대교회 같은 경우에는 처음에는 유대교처럼 화요일과 목요일을 금식일로 하다가 나중에는 유대교와 차별화하기 위해 수요일과 금요일을 금식하는 날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지정된 금식일에 일부러 금식하고 있다는 표시를 내면서 거룩한 척하는 사람들이 많았던가 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금식할 때는 그렇게 드러내놓고 나 금식한다고 자랑하면서 하지 말고 하나님과의 일대일 관계에서 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의 본문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617절 말씀을 보세요.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금식하는 사람들 보면, 세수도 안하고 머리도 감지 않아 꼭 도인처럼 하시는 분들이 가끔 있는데 금식은 그렇게 표내면서 드러내지 말고, 18절 말씀과 같이 은밀한 중에하나님 앞에서 마음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형식적 금식을 하지 말고 진정한 금식을 하라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을 단정히 하는 금식을 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진정한 금식이란 단지 음식을 먹지 않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 것들에 대해 금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데 있어서 방해가 되는 것들, 하나님 나라에 모든 것을 드리려 하는데 그것을 방해하는, 그 관심을 빼앗아가는 세상적인 가치들,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점령하고 있는 세상적인 마음이나 가치들, 탐욕이나 세상적인 욕구들로 가득찬 것들을 강제적으로 떨쳐냄으로써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다 비워버리는 것, 그것이 진정한 금식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자꾸 하나님이 아닌 그 다른 무엇에 집중하도록 만듭니다. 하나님 대신에 세상적인 것들을 떠받들도록 합니다. ‘뉴에이지의 사상들로 만연한 세상은 우리에게 자꾸 새로운 우상을 섬기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갑니다. 그런 세상적 유혹으로부터 과감하게 벗어나 다시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하는 세계관을 정립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털어내 버리는 것이 진정한 금식의 의미라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금식안식일은 상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안식일이란 세상 것들에 대해 금식하는 날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3. 참된 금식과 안식일

 

원래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안식일이란 뒤를 돌아보고, 위를 올려다보며, 미래를 내다보는 세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안식일에는 육체를 쉬도록 하면서 우리의 영혼이 이 세 가지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날로 진정으로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께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육체가 쉰다는 것은 세상적인 모든 것들과 단절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참다운 금식인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안식일이란 세상 것들을 끊는 날, 마음을 비우는 날, 그리고 하나님의 영을 채우는 날이라 정의하고 싶습니다.

 

(1) 끊으라!

 

금식은 끊는 것입니다. 밥을 끊는 것입니다. 그냥 입으로 들어가는 밥만이 아니라 내 영혼으로 들어가는 세상적인 모든 것들을 끊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는 안 되니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끊는 것입니다. 모든 무거운 짐들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 것입니다. 모든 근심과 걱정들을 끊어내는 영적 할례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의식적인 결단을 통해서 마음속에서 정리해야 될 부분을 과감하게 잘라내는 그런 할례를 하라는 것입니다. 내 마음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아직도 죽지 않고 성성하게 살아있는 이기적인 마음, 옛사람의 찌꺼기들을 과감하게 잘라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금식이고 안식일에 해야 할 금식인 것입니다.

 

(2) 비우라!

 

두 번째는 비우라는 것입니다. 끊어야 비워집니다. 버려야 비워집니다. 금식은 더 이상 먹지 않는 것입니다. 중단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워지기 때문입니다.

사실 비운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비워야 새로운 것으로 채울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비움이 없으면 채움도 없습니다. 세상적인 것들, 쓰레기 같은 마음들이 가득하면 하나님의 영이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가시나무라는 노래의 가삿말을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는 세상적인 마음들, 자신을 향한 마음들이 너무나도 많아 하나님의 영이 자리하실 곳조차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 마음에 내가 가득하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영의 지배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비워야 합니다.

왜 금식을 합니까? 비우기 위해서입니다. 이기적인 마음들, 세상적인 마음들, 나를, 나의 영을 지배하는 헛되고 헛된 것들을 비우기 위함입니다.

왜 이렇게 비웁니까? 비워야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비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흔히 마음을 비운다는 말은 많이 씁니다만 말이 쉽지 행동까지 쉽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도 보면 마태복음 19장에 나오는 재물이 많은 청년같은 경우는 결국 마음을 비우지 못해 하나님 나라에 동참하지 못한 경우입니다. 재물은 있다가도 없는 것인데 그 재물로 인해 결국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된 것입니다.

반면 모든 것을 비운 경우도 나옵니다. 바로 모세입니다. 애굽의 2인자로서 모든 권세를 다 쥘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히브리 민족으로서의 사명감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버립니다. 마음을 비운 것이지요. 그렇게 비웠기에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자신을 비웠다고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2:7a)

비워야 합니다. 비워야 새로운 마음을 담을 수 있습니다.

 

(3) 채우라!

 

금식을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새로운 것,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영을 채우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안식일에 하는 3가지 중의 마지막 과정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영을 채운다는 것을 좀 철학적인 표현으로 바꾼다면 소유중심에서 존재중심으로 변환시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대인 심리학자인 ‘Erich From'소유냐 존재냐(To Have or To Be)'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안식일은 무엇이든 가지려고 하는 소유중심의 방식(having mode)’에서 존재중심의 방식(being mode)'으로 넘어가, 소유에 대한 관심을 뒤로 하고 그냥 그대로 있음을 즐기는 날이라

 

유대인 사상가인 ‘Abraham Joshua Hesche(아브라함 조슈아 헤셀)’안식일 subbath’이라는 책, 우리나라에는 안식-현대인이 잃어버린 안식의 참 의미를 말하다라는 책으로 번역되어 출간되었습니다만, 그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안식일이란 신이 물질 너머에 계시다는 것과 인간이 물질세계를 초월하여 신의 영역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는 특별한 날이다.”

 

여러분!

안식일이란 일상의 차원을 금식하고 영원의 차원을 누리는 날입니다. 소유에 대한 관심을 뒤로 하고 그냥 그대로 있음을 즐기는 날입니다. 존재 자체를 즐기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존재 자체를 즐긴다는 것은 지금 내가 몇 평짜리 아파트에서 어떤 TV, 어떤 문화기기를 즐기면서 있는가, 돈이 얼마나 있는가가 아니라 자신을 되돌아보며 지금까지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여 주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해 감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가정을 안식처라고 말하는 것은 가정에서만큼은 누구든지 자신의 외모나 학력, 실력이나 재력 등등의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영향 받지 않고 그저 존재자체로서 인정받고 사랑받는 곳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의 영혼이 편히 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배우자를 바라보면서도 당신이 나에게 어떻게 해주니까 좋다, 싫다가 아니라 당신이 내 남편, 내 아내라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 감사함을 느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녀를 바라보면서도 공부 잘하고, 못함을 떠나 네가 내 아들임이, 내 딸임이 자랑스럽다고 고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도들을 바라보면서도 교회에서의 직분, 사회에서의 위치, 빈부의 차.... 모든 것을 떠나 하나님 안에서 형제 된 존재 자체로서 즐거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일을 안식일이라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주일만큼이라도 세상의 모든 여건들에 구애받지 않고 존재 자체로서 즐거워하는 날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끊고 비운 다음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의 마음을 채워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금식의 존재 이유이고 안식일에 해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4. 끊고 비우고 채우기 위하여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보는 성경, 그러니까 정경은 아닙니다만 194512, 이집트 카이로에서 약 500km 떨어진 나일강 상류 Nag Hommad에서 발견된 도마복음, The Gospel of Thomas'에는 이런 말씀이 적혀 있습니다.

참고로 도마복음은 마태, 마가 누가복음 등의 공관복음의 내용과는 50% 정도 중복되는데요, 원본은 요한복음과 비슷한 서기 100년경에 쓰여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114절 가운데 27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세상 것들에 대해 금식하지 않으면 너희는 나라를 찾을 수 없으리라 너희가 안식일을 안식일로 지키지 않으면 너희는 아버지를 볼 수 없으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이스라엘의 하루는 밤부터 다음 날 해 떨어질 때까지입니다. 우리의 가치관이나 시간 개념과는 달리 이스라엘은 해가 질 때부터 새로운 하루가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루를 안식함으로 시작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쓰는 태양력도 보면 맨 먼저 무슨 요일이 나옵니까? ‘일요일입니다. ‘일요일안식하는 날입니다. ‘쉬는 날입니다.

그러니까 안식이 있어야 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이란 영적 무장을 하는 날입니다. ‘영적 에너지를 충전하는 날, 삶의 에너지를 얻는 날인 것입니다. 그것이 창조 질서( Creation Order)인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도 안식일로 이 세상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에덴동편에 사는 사람들은 쉼과 일이 아닌 일과 쉼으로 바꿔놓았습니다.

일에 대한 보상으로 을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이 불행의 시작인 것입니다.

 

안식일의 주인은 예수님입니다. 오늘 본문 마가복음 227-28절이 그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우리를 지켜주는 것입니다. 그 안식에 참여함으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게 되는 것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2:5)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안식일은 그러니까 안식과 쉼과 샬롬은 인간의 노력으로 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작업을 우리는 매주 반복하는 것입니다.

안식과 쉼과 샬롬으로 시작한 우리가 한 주간 세상 속에서 살다 보니 그 마음 밭이 돌짝 밭으로, 가시덤불로, 길가로 변해 버립니다. 그럴 때 우리는 다시 안식일에 금식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끊고 비우고 채우는 것입니다. 그래야 또 승리하는 한 주간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금식이고, 이것이 안식일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금식이란 단식하는 것입니다. 끊는 것입니다. 안식일이란 히브리어로 시바트’, 이라는 의미입니다. 안식이란 세상의 모든 걱정, 근심에서 벗어나 육체적으로 편히 쉬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마음을 바치는 날입니다.

이런 금식과 안식일의 참 의미를 우리가 안다면 참으로 더욱 복된 날들이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끊고 비우고 채우시길 축원 드립니다. [추부길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