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영성

혀를 조심하라!

야고보서 3:1-12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3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 먹여 온 몸을 어거하며 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5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7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 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10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11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 12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뇨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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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에 보면 夫人不言이고 言必有中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릇 사람은 말수가 적어야 하고, 말을 할 때는 반드시 도리에 어긋남이 없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평소에는 과묵해야 되지만, 말을 할 때는 적절한 발언,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소학에는 말을 골라서 하지 아니하면 재해를 부르게 된다는 말도 있습니다. 고전이나 여러 선학들은 이렇게 말에 대해 상당한 경계를 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말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러할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도 말에 대해 여러 부분에서 경고와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찾아 본 말에 대한 말씀만 해도 480여 군데가 넘습니다.

마태복음 123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누가복음 645절도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고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가 말을 왜 조심해야 하는지, 그렇지 않으면 어떤 결과들을 가져오게 되는지에 대해 살펴 보면서 우리의 입술에 대한 지혜를 얻고자 합니다.

 

우선 오늘 본문의 1절 말씀은 12절 말씀까지의 서론으로, 우리에게 심각한 경고를 던져줍니다.


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좀 쉽게 말씀드리자면 이런 뜻입니다. 제발 남의 결점을 들추어내는 일들에 열을 올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누구나 할 것 없이 많은 실수들을 범하고 살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한다면 판단력을 가지고 절제할 것은 절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같이 계속해서 그러한 악을 행한다면 분명히 거기에 합당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엄중한 경고입니까?

 

1. 말은 영적의 성숙 정도를 나타낸다.(2)

 

그러면서 2절에 말은 우리의 영적 성숙 정도를 나타낸다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2절을 보면 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고 적고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합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아직 온전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돌이 갓 지난 아이들을 보면 자주 넘어집니다. 7-8살짜리 아이들도 자주 실수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직 제대로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얼마나 예수님을 닮았느냐의 정도, 다시 말해서 영적인 성숙의 정도는 얼마나 말의 실수를 하지 않는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었다면 뭔가 달라질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는데, 그 달라짐이 말을 어떻게 하나를 보면 그 사람의 성숙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을 보면 말끝마다 욕을 섞는 사람도 있고, 말을 했다하면 누군가를 비판하고 정죄하고, 또 자기 자랑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직 다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어떤 경우는 말을 통해 다른 사람을 세워주기는커녕, 상대방을 실족시키고,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역시 아직 영적 성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은 우리 인격의 거울이라고 말합니다. 언어는 생각의 옷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릇은 그 소리로써 깨어진 것을 알고 사람은 그 말로써 그의 지식을 알 수 있다고도 말합니다. 우리가 쓰는 언어라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의 삶의 모습과 능력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그 사람의 신앙까지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에머슨이라는 사람은 사람은 자신의 말로 자기의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2절은 이 부분에 대해 분명한 정리를 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에 실수가 없게 하기 까지는 온 몸을 다스릴 수 있는 성숙함에 결코 이르지 않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말은 곧 우리가 말을 어느 정도 잘 가려서 할 줄만 알아도,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가 말에 실수를 하는 빈도가 점점 줄어들게 되고, 그래서 말의 실수가 없어지면 그것이 바로 우리가 영적 성숙함에 이르렀다는 증거가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본문 2절이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말은 작지만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3-5)

 

성경은 또 말이라는 것은 아주 작지만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고 말을 합니다. 3절에서 5절까지를 보겠습니다.

“3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 먹여 온 몸을 어거하며 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5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좀 쉽게 설명하자면 이런 뜻입니다. 아무리 큰 말이라 할지라도 그 입에 작은 재갈을 물리기만 하면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아무리 큰 배라 할지라도, 그리고 그 배에 거센 바람이 분다 할지라도 그 배에 달린 작은 키 하나 때문에 선장이 원하는 방향으로 얼마든지 몰고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혀는 아주 작은 것이지만 제대로 그 혀를 통제하지 아니하면 엄청난 화를 불러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그 혀를 잘 조절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우리의 선장되시는 하나님의 의도대로 이끌려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작은 불씨 하나가 거대한 숲을 다 태워 버릴 수 있듯이 우리의 작은 혀가 그 사람의 인생까지도 몰락시킬 수 있다는 것을 주의하라는 말씀입니다.

 

서양 속담에 개구리는 입 때문에 먹힌다는 말이 있습니다. 꿩도 울지 않으면 총에 맞지 않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개구리는 시끄럽게 울기 때문에 뱀에게 발각되어 잡아 먹히는 것이고, 꿩은 울지 않으면 사냥꾼의 총에 맞을 까닭이 없는데, 울기 때문에 자신의 위치를 노출시킨다는 것입니다.


이런 속담들이 주는 교훈은 이런 것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 절대 말해서는 안되는 것들을 경솔하게 내뱉음으로 인해 화를 불러 들이는 것을 경계하는 말들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상담을 하면서도 보면 부부간의 파경도 사실은 혀를 잘못 놀림으로 인해 비롯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조그마한 실수가 파경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미국 가톨릭대학교 클리프 느타리우스교수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평생 해로한 부부나 파경을 맞은 부부나 부부싸움을 하는 횟수에는 별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주고 받은 언어에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행복한 부부는 주로 감정이 담긴 사랑의 대화를 많이 하는 반면, 파경을 맞은 부부들은 100마디 중에서 10마디 정도가 마음을 아프게 하고 상처를 주는 말들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 단 10마디의 차이가 부부간에 행복과 불행을 좌우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요즘 대통령의 탄핵 문제로 나라가 시끄럽습니다만 그렇게 된 것도 결국은 대통령의 말 때문에 그런 것 아닙니까? 대통령은 그러한 실수가 있을 수도 있는 일이라고 하지만 그 입 때문에 온 국민이 피해를 보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탄핵이 된다고 해도 다시 대통령을 뽑느라고 엄청난 돈이 들것이고, 또 그 과정에서 얼마나 큰 소용돌이가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탄핵이 각하된다고 해도 그동안의 국론 분열과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는 누가 보상해 줄 수 있습니까?

 

이런 결과가 꼭 대통령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모두에게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조그마한 혀, 입을 다물면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 혀를 잘못 놀림으로 인해 행복하게 출발했던 결혼의 배가 암초를 만나게 되고 결국은 전복되는 것 아닙니까?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배경에는 어린 시절부터 생명의 말, 사람을 살리는 말들을 듣고 자란 사람들입니다. 행복한 사람의 배경에는 반드시 행복을 만들어 준 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말은 상상할 수 없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그 인생이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사람들, 인생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자라오면서 들었던 언어들이 다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언어, 사람을 죽이는 말들, 다시말해서 사탄이 주는 말들을 듣고 자라온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언어는 그 사람의 삶 전체를 움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야고보는 혀가 정말 작은 존재이지만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요인이 된다는 점에서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말은 생을 불사르는 불이 될 수 있다.(6)

 

6절을 보면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고 정의합니다. 불이라는 것이 난로 안에 들어가 있으면 온 집안을 따뜻하게 해 주지만 그 불이 난로 밖으로 나오게 되면 그 집을 다 태워 버립니다. 성냥불의 크기는 아주 작지만 그 성냥불 하나가 온 산을 태워 버린다는 것입니다. 말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입에서 잘못 튀어 나오는 말들이 여러 사람의 입으로 옮겨 다니다보면 엄청난 위력을 갖게 됩니다. 다시말해서 한 마디의 말이 수천명의 영혼까지도 병들게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을 잘 절제할 수만 있다면 그 입술이 사랑과 행복을 만들어주는 보물이 될 수 있지만 그러하지 않다면 사탄의 공격무기로 돌변하여 모든 관계를 다 파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혀는 또 불의의 세계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혀는 죄가 다 드러나는 총체적인 범죄집단, 어두움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또 그 혀에는 지옥의 불이 타오르고 있어서 우리의 인생의 행로를 멸망과 재앙의 화염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산에 불이 나게 되면 그 불로 인해 다시 자연이 회복되려면 수십 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합니다. 그만큼 영향을 끼치는 폭이 넓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여자의 가슴에 한을 남기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리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말이 주는 상처는 깊고도 깊을 수가 있다는 말일 것입니다. 말이 씨가 된다고 말합니다. 그 씨는 처음에는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결국은 그 씨로 인해 열매 맺게 되는 날이 반드시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나중에 엄청난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말하는 사람은 씨를 심는 사람이고 듣는 사람은 거두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하기 전에 다시한번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독 묻은 화살을 목적도, 방향도 모른 채 쏘게 되는 것입니다.


말은 또 생각나고 또 생각나게 만들어서 계속해서 해를 끼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두고 두고 그 사람을 지옥의 불더미 속에서 살게 만들기도 합니다.

 

미국의 '아동학대 방지 위원회'에서 화가 난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주로 내뱉는 말들 가운데 자녀들에게 해를 끼치는 말들을 모아서 기록을 해 놓은 것이 있는데 그중에는 이런 말들이 있습니다.


너는 참 한심한 녀석이구나!”

나는 너만 보면 미쳐버릴 것 같아! 그냥 입 다물고 있어!”

! 바보야! 너는 말귀도 못 알아 먹니?”

너는 평생에 도움이 안돼!”

여기서 나가 버려! 꼴도 보기 싫어! 아이구, 지긋지긋하다!”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뿐만 아닙니다. 혀는 그렇게 상대방에게 피해를 입히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도 타락시킬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스스로에게 던지는 그 말들이 올무가 되고 끝내는 그 말의 위력 안에 갇히고 맙니다. 그래서 그렇고 그런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옛날부터 혀는 화살에 비유되어 왔습니다. 그렇다면 말을 칼에다 비유하지 않고 왜 화살에 비유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어떤 사람이 화가 나서 칼을 빼 들었다가도 상대방이 용서를 빌면 그 칼을 다시 칼집에 넣을 수 있지만 활은 한 번 쏘아 버리면 아무리 후회를 해도 다시 거둘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말일 것입니다.

 

결국 그 혀에 있는 불을 끄지 아니하면 우리는 그 혀의 포로가 되고, 그 혀로 인해 인생을 망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불을 끈다는 것이 다름 아니라 우리의 입술을 제어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자신의 속사람을 변화시킴으로 인해 사탄이 입술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지배하시도록 그 공간을 내어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자신도 보호할 수 있고, 우리의 이웃들에게도 사망과 파괴, 불행을 주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주는 존재로, 소망과 평화를 주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4. 말은 사람을 죽이는 무서운 독이 될 수 있다.(7-8)

 

7절과 8절은 계속해서 말은 사람을 죽이는 무서운 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같이 보겠습니다.

 

7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 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간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짐승들과 자연들을 지배할 수 있겠지만 자기 혀만은 자기 마음대로 길들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혀가 시시때때로 죽음의 독을 내뿜으려고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결국 그 혀를 제어하지 못함으로 인해 독을 뿜는 독사와 같은 존재가 되고야 말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3:13에도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다고 거듭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위클리프'라는 사람은 혀는 뼈가 없지만 뼈를 부숴뜨릴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우리의 능력으로는 혀를 길들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그 혀가 사탄의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자체를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수시로 깨어서 기도하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언제든지 사탄의 장난감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5. 한입으로 두말하는 경우도 있다.(9-12)

 

이번에는 9절에서 12절까지를 다시 보겠습니다.

 

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10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11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 12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뇨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여기서는 우리의 혀가 합 입으로 두말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이런 뜻입니다.

 

우리는 이 혀로 어떤 때는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를 찬양하고 또 어떤 때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든 인간을 저주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축복과 저주가 같은 입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러한 일들이 결코 옳지 않다고 말을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한 샘에서 단물이 나왔다가 쓴물이 나왔다가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무화과나무에서 올리브 열매를 따거나 포도나무에서 무화과 열매를 딸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짠 못에서 단물을 퍼낼 수는 없는 것같이,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데, 사람들은 그렇게들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38절에서도 마찬가지의 말씀을 합니다. 이 말씀은 다름 아니라 그렇게 은혜 받은 것 같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말들이 사람을 해치거나 상처를 주는 말을 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교회 안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배우자를 불평한다든지, 다른 말로 누군가를 비판한다는 것은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입에서 선한 말만 나오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한 샘에서 단 물이 나왔다가 쓴 물이 나온다든지, 무화과 나무에서 올리브가 열린다든지 하는 일이 있을 수 없듯이, 설사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러한 연못이나 나무들은 버림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성경은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가리켜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나오는 언어도 당연히 새로운 피조물답게 변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조금씩 변해 가는 과정이니까 아직도 두 가지 종류의 말이 나올 수 있지만 성령께서 주시는 말들로 점점 더 채워져 가야 정상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것이 새사람으로 덧입혀져 가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6.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은 혀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다섯 가지로 요약하여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그 말은 곧 혀를 제어하고 변화시키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위한 아주 중요한 첩경이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데 있어서 표징이 되는 것이 바로 언어라는 사실을 말해 준다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이 혀의 엄청난 영향력에 대해 간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경고를 우리의 마음 깊이 새기고 우리의 그 중요한 혀를 사탄에게 내어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혀가 만약 사탄의 장난감으로, 무기로 사용된다면 그것은 곧 자신의 영적인 삶도 무너지지만 그 사람으로 인해 상대방이나 그 주위의 사람들 역시 큰 피해를 입게 된다고 야고보는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주 깨어 기도하면서 혀를 절제할 수만 있다면, 그래서 그 혀를 성령의 지배 하에 둘 수만 있다면 아마도 그 순간부터 우리들은 우리 주위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는 자로, 사랑을 주는 자로, 화평을 주는 자로, 평강을 주는 자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여러분에게 부탁드립니다. 우선 말하기 전에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말을 하십시오. Think Twice! 특별히 내가 하려고 하는 이 말이 과연 해도 되는 말인지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하려고 하는 그 말이 혹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아픔을 주는 말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말하는 사람은 씨를 심는 사람이요, 듣는 사람은 거두는 사람입니다. 생각 없이 하는 말은 목적 없이 쏘는 활과도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하면서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더불어 내가 하려고 하는 이 말이 성령께서 주시는 말인지, 아니면 사탄이 주는 말인지 한 번 더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내 입술에 사탄이 머물러있지는 않은지 확인해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사람을 아프게 하고 자신을 학대하는 그런 말들을 하도록 시키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탄만이 하는 일입니다. 누군가를 욕하고 비판하고 싶을 때도 얼른 한 숨을 쉬고, 침도 한번 삼킨 다음 한번 더 생각해 보고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사탄의 무기로 내 입술을 내 주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한번 더 생각하고, 그 입술을 성령께서 지배해 주시기를 원함으로 인해 우리 모두가 영적인 성장을 이루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혀를 능히 길들일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우리가 성령님을 의지하지 않고서는 언제든지 우리의 혀가 누군가의 영을 죽이는 무기로 변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혀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우리의 속사람이 항상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되도록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말해서 우리의 마음을 성령께서 지배하시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 속에서 잉태된 다음, 혀로 만들어져서, 입을 통해 나가게 되면 그 말씀은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발휘하는 영적인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자주 암송하고 또 깨달아가면서 그 말씀을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훈련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들이 나의 삶으로 적용되기 시작한다면 그 순간부터 나의 속사람은 강건해지기 시작합니다. 사탄이 역사할 틈을 점점 사라지게 만듭니다. 그래야 성령께서 내주하실 수 있고, 우리가 날마다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시한번 우리의 혀가 갖는 엄청난 파괴력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심지어 자신과의 관계까지 다 파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깨어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항상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항상 내 입술에 불침번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발터라는 사람이 했던 말로 오늘 말씀의 결론을 내리려 합니다.

 

부주의한 말은 싸움에 불을 붙일 것입니다.

잔인한 말은 사람을 치고 죽일 것입니다.

지혜로운 말은 길을 평탄하게 닦아 줄 것입니다.

기쁨에 넘치는 말은 낮을 밝게 비춰 줄 것입니다.

때에 적합한 말은 급박을 완화시켜 줄 것입니다.

인자한 말은 상처를 고쳐주고 축복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