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영성②] 혀를 다스리는 지혜
-교만을 벗고 겸손을 입으라!-

◉ 마태복음 12:33-37
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실과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실과로 나무를 아느니라 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3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37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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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은 내 마음을 표현한다.

옛날에 말하기를 너무나도 좋아하는 왕이 있었습니다. 그 왕이 한번 말하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은 말을 붙일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나라와 백성의 사정을 알릴 길이 없었습니다. 

마침 그 궁중에 왕을 가르치는 역할을 맡고 있는 왕사(王師)가 있었습니다. 그 왕사는 왕의 버릇을 고쳐야겠다고 마음먹고 거북이 한 마리가 공중에서 떨어지도록 꾸몄습니다. 공중에서 떨어진 거북이는 당연히 박살이 났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왕사는 왕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이 거북은 원래 너무나도 말이 많았습니다. 욕심도 많았지요. 백조 한 마리가 거북에게 히말라야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백조는 자신이 나뭇가지 한 쪽을 물고 나머지 한쪽은 거북이에게 단단히 입에 물고 있으라고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말이 많은 거북은 그동안을 참지 못하고 지껄여 댔습니다. 그래서 입이 열리는 순간 나뭇가지를 놓쳐 버리게 되었고 그래서 공중에서 떨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를 듣고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자고로 사람은 태어날 때 입 안에 도끼를 가지고 나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은 말을 함부로 함으로써 그 도끼로 자신을 찍고 맙니다. 말은 반드시 필요할 때 사용돼야 말로서 가치가 있는 법인데, 그렇지 않게 되면 그 순간부터 말이 아니라 소음이요 단지 소리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바로 우리의 마음과 말의 관계에 대해 설명을 잘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쉽게 풀이하자면 이런 뜻입니다. 

나무는 그 열매를 보면 안다는 것입니다. 좋은 나무라야 좋은 열매를 맺게 되고 나쁜 나무에는 당연히 나쁜 열매가 맺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악한 인간들의 입에서 어떻게 참된 말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말은 그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선한 말은 선한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고 악한 말은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분명히 경고하지만 우리가 언젠가는 서야 할 그 심판 날에 우리가 뱉은 터무니없는 말들에 대해 반드시 해명해야할 날이 오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가 한 말에 따라서 우리가 옳은 사람으로 인정받기도 하고 죄인으로 판결받기도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들에게 주는 무시무시한 경고이면서 그만큼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권면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 그대로 분명한 것은 말은 마음의 이야기(Heart Talk)라는 사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하는 말을 들어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이 어떠한 상태인지 금방 알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는 말을 들으면서 ‘참으로 빈 수레 같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말들은 들으면서도 짜증이 납니다. 단지 소음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의 말은 들으면 들을수록 정감이 가고 말을 더 하고 싶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은 그 마음 가운데 있는 사랑과 정성, 그리고 인격이 그대로 말에 묻어나기 때문일 것입니다. 

가끔은 마음에 없는 말을 하는 경우도 있고 또 듣는 경우도 있습니다. 말을 해 놓고도 속으로는 쑥스러울 때가 있고, 또 그런 말을 들으면 벌써 듣는 순간 괜히 마음이 훵해지기도 합니다. 그만큼 마음을 울리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할 것입니다. 

여러 교회들을 다니면서 설교를 하다보면 어떤 교회는 정말 믿음없이 기도를 하고 그저 입으로만 찬양하는 경우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찬송은 회개하고 결단을 촉구하는 내용인데도 얼굴 표정을 보면 전혀 그렇게 보이질 않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나는 행복합니다’라는 말을 따라서 해 보라고 그러면 입은 따라 하는데 그 얼굴의 표정은 행복과는 상당히 먼거리에 있는 분들도 참 많습니다. 

설교를 들으면서도 저 사람의 설교가 실천이 있는 설교인지, 삶과는 전혀 거리가 먼 머리만으로 하는 설교인지 사람들은 금방 구분해 내지 않습니까? 한마디로 믿음이 없는 설교나 기도들도 많이 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난 번에 어느 교회에서 나이가 많이 드신 권사님이 기도를 하는데 저는 얼마나 감격하면서 그 기도를 함께 했는지 모릅니다. 말은 어설프고 기도 내용도 정리가 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그 기도 내용들이 얼마나 진실된지 기도를 하면서도 저는 참 감동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저 입술의 기도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라야 기도로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많은 분들이 마음에서 나오는 기도가 아니라 입술로만 드리는 경우가 참으로 많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다 위선적인 마음에서 나오는 말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결국 말이라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거니와 또 우리의 영적 상태를 그대로 드러내 놓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한 말에 대해 심판 날에 심문을 받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 안에서 잉태가 되면, 그 하나님의 영이 우리들의 혀를 통해 입밖으로 나가게 되면, 그때부터 그 말씀은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발휘하는 영적인 힘이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은 결국 우리 안에 그러한 능력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말하자면 내 안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하는 것이니까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하냐에 따라 당연히 말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역사하지 아니한다면,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역사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이 없다고 부인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어찌 선할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로마서 3장 10절로부터 18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저희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사도 바울은 분명히 강조합니다. 하나님을 잘 모르는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같이 흉측한 짓들을 많이 하게 되고, 그들이 하는 말들을 들어 보면 헛되고 핫된 것들이요, 또 믿을 수 없는 말들만 한다는 것입니다. 꼭 뚜껑이 열려있는 무덤과 같이 썩은 냄새가 진동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혀에 발린 말만 하고 말마다 저주하고 으름장을 놓는 소리들만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영적으로 무능력한 사람들은 그 입을 통해 그 무가치함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야고보는 우리의 입을 큰 배의 키와 비교하기도 합니다. 야고보서 3장의 말씀입니다(3:3-6). 엄청난 배가 결국은 배 맨 끝의 키에 의해 방향이 좌우되듯이 그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우리들의 말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 말이 그 마음에서 나오니까 결국은 우리들의 마음이 그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방향타가 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로 가득한 마음은 죄로 얼룩진 말을 하기 마련입니다. 꼭 열린 무덤이 죽음의 냄새를 풍기듯이 죄는 입을 통해 발산되고 말에 의해 퍼진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잠언 6장 2절에 보면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다름 아니라 내가 하는 말이 어떠하든지 간에 그 말대로 반드시 역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끔 어떤 분들을 보면 아주 막말을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 자식들 때문에 신경질 나 미치겠어요. 어떻게 저런 놈들이 태어났는지..”

이런 말들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쓰는 말을 마귀의 언어로 프로그램화 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그 입에서 나온다는 말이 그러한 악한 말들인 것입니다. 당연히 그 입에서 질병과 아픔, 심지어 죽음에 관한 말들이 나올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말한 그대로 된다고 말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말을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미치겠네.”
“죽겠네”
“환장하겠네.”
“요즘 죽을 지경입니다.”

여러분! 사망은 마귀에 속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사탄의 궤계에 놀아나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지 말자는 것입니다.

2. 말은 제어할 수 있다.

결국은 말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그 마음을 먼저 다스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근본적인 대책인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들은 우선 말을 다이어트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잠언 17:28에 보면 미련한 자라도 말수가 적으면 슬기롭고 지각있게 보인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아예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말을 잘 가려서 해야 할 말인가 해서는 안될 말인가를 잘 가려 하라는 것입니다. 우선 그렇게 말을 다이어트하기 시작함으로 우리의 입술은 제어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우리들의 마음을 다스리고 치유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디 성서신학교’ 교장인 ‘조셉 스토웰’은 ‘혀를 다스리는 지혜’라는 책에서 언어의 범죄는 교만과 분노와 두려움에서부터 비롯된다고 말합니다.

(1) 교만한 마음

우선 교만한 마음으로부터 악한 말이 나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교만이란 것은 하나님과 그 영화로우심을 가로채어 자신을 높이려는 행위를 말합니다. 하나님 아니어도 내가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참으로 어리석은 마음을 교만한 마음이라 말합니다. 당연히 하나님 앞에 합당치 못한 일이라(시 10:4) 할 것입니다. 

잠언 8:13에 보면 악한 행실과 패역한 말이 교만과 거만에서 비롯된다고 말합니다. 시편 10편에도 자랑과 저주,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 거짓말, 다툼이 교만에서 나온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러한 교만은 악한 말만 할 뿐 아니라 결국은 다툼을 일으키게 된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패망의 앞잡이가 된다고도 말하는 것입니다. 

또 하늘을 나는 이야기입니다.

개구리들에게 한 가지 소원이 있었습니다. 새들처럼 하늘을 한번 훨훨 날아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호기심 많은 개구리가 독수리를 찾아가 사정을 했습니다. "나도 당신처럼 멋있게 하늘을 날고 싶습니다. 독수리님의 다리를 붙잡고 한번만 날게 해 주세요" 결국 독수리는 그 개구리의 요청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드디어 개구리는 독수리의 다리를 붙잡고 꿈에도 그리던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세상 풍경은 정말 환상적이었습니다. 땅에 있는 개구리들이 부러운 눈빛으로 하늘의 개구리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땅에 있던 한 개구리가 하늘의 개구리에게 물었습니다. "야, 누가 이런 기막힌 생각을 해냈니?" 그러자 개구리는 순간 우쭐해져서 한 손으로 엄지 손가락으로 최고 라는 표시를 하면서 내 밀고, 한 손으로는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기 위해 독수리를 붙잡은  두손을 놓으면서 이렇게 말 했습니다. "내가 했지." 

그 순간 개구리는 여지없이 땅으로 추락하고야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만은 패망을 낳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을 내 세우기 좋아하는 교만한 자의 말로를 이 개구리는 대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

교만한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생각하지 않은 채 야망을 성취하려고 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을 지배하려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쉽게 화를 내며 경솔한 말들을 하게 됩니다. 그뿐 아니라 자신을 자랑하고 아첨하고 저주하는 말들, 조롱하고 비방하고 험담하는 말들이 그 입에 가득합니다. 한마디로 입이 가벼우면서도 쓰레기를 양산한다는 것입니다.

(2) 분노의 마음

분노의 마음도 비방과 불평과 잔인한 말들을 쏟아내 놓습니다(신 1;민14;). 

잠언 27:4에 보면 “분은 잔인하고 노는 창수 같거니와 투기 앞에야 누가 서리요”라고 말씀합니다. 한마디로 누구든 화를 내면 잔인해지고, 흥분을 하게 되면 콸콸 흘러넘치는 큰 물과 같이 걷잡을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이 시샘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오늘 분노에 대해 구체적인 말씀은 하지 않겠지만 그 분노로 인해 영적으로, 언어적으로 하나님께 반역을 하게 된다고 민수기의 열두 정탐꾼 이야기는 우리에게 교훈을 줍니다.  

(3) 두려움에 찬 마음

뿐만 아니라 두려움에 찬 마음도 결국은 그 말을 더럽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민수기 14장에 보면 이스라엘 족속은 가나안 족속을 두려워함으로 인해 불평과 반역의 말을 하게 됩니다. 결국은 그릇된 결정을 함으로 범죄의 말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민 14:9-10).

미국의 대통령 ‘프랭크 루즈벨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에게 두려운 것은 없다. 다만 스스로 두려워할 뿐이다.” 

잠언 10장 11절에 보면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 말씀을 우리가 적극적으로 믿으면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두려움을 가지면 사탄이 역사합니다.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3. 교만을 벗고 겸손을 입으라!

중요한 것은 이러한 교만과 분노, 두려움을 버리고 새사람을 입어야 우리의 입술도 새로워진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0:9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마음을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 속에 교만함 대신에 참된 겸손을, 분노 대신에 인내를, 두려움 대신 사랑을 심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겸손과 사랑과 인내가 우리 마음을 주장하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말과 우리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돕는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런 말들을 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을 살리는 말들을 하시기 바랍니다.

자기 자랑을 하지 말고 상대방을 세우는 말들을 하시기 바랍니다.
겸손한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도 바울은 회심한 후 몇 해 되지 않은  A. D. 59년에 자기 자신을 가리켜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고전15: 9)" 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겸손하였기에 나올 수 있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때로부터 5년이 지난  A. D. 64년에는 바울은 스스로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엡3: 8)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A. D. 65년에는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딤전1: 15) 라고 말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짐을 가볍게 실은 배는 물에서 높이 뜨고, 짐을 무겁게 실은 배는 물에서 높이 뜨지 않는 법입니다. 은혜가 많을수록 사람들은 겸손해집니다.

서양 속담에도 빈 수레가 큰 소리를 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깊은 물은 소리 없이 흐른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고린도전서 4장 6절에서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라고 간절하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교만할수록 마귀를 닮고 겸손할수록 주님을 닮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자신을 돌이켜 보면서 낮아질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겸손해지고, 그래야 우리의 입에서 선한 말들을 내어 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겸손하게 되면 당연히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께 다 내어 놓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권리에 복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되심을 믿습니다. 그 주인되심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겸손한가는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얼마나 주권을 가지고 계시느냐에 따라 좌우되는 것입니다. 

겸손하게 되면 우리의 말들 속에서 반항적인 말들, 수군거리는 것, 분노와 거짓, 비방의 말들이 사라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정말로 겸손해지기 위해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날마다 우리 마음 가운데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모든 것들이 다 주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사실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가 겸손해집니다. 

성공은 우리를 교만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자신이 어디로부터 왔는지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게 되는 법입니다. 교만이 하늘을 찌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나갈 때, 뭔가 잘 되어갈 때 더욱 허리를 숙이시기 바랍니다. 더 겸손해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겸손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 겸손이 우리 마음 가운데 가득해야 그때부터 우리의 입에서는 평화를 주는 말, 행복을 주는 언어들이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지를 압니다. 우리의 영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프로그램화하고 마음에 의심치 않고 믿는다면 반드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말은 우리의 속사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속에서 영적인 힘은 말을 통해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자기의 혀로 믿음을 파괴하는 말들을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말이 입 밖으로 나오려고 하면 우리는 얼른 호흡을 들이키면서 그 말들을 제어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사탄이 역사하지 않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다시 하나님의 영에 의해 지배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오는 한 주간 살아가시면서 깨끗이 청소해 놓은 집안으로 사탄이 진흙이 잔뜩 묻은 발로 여기저기 뭉개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사탄이 아예 우리 집 근처에도 오지 못하도록 경계하여야 할 것입니다. 

말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생명을 살리는 말, 영을 살리는 말들만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혀를 진정으로 다스릴 줄 아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 행복한 관계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