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습니다, 그러나 있습니다!

* 디모데후서 49-18*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12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13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14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15 너도 그를 주의하라 그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16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1. 겨울의 문턱에서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이라는 유명한 학자가 인생을 4계절에 비유해서 8계단으로 나눈 적이 있습니다. 유아, 유년, 소년소녀기는 봄이고, 사춘기와 청년기는 여름이며 중년기와 중년후기는 가을, 그리고 노년기를 겨울로 비유했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겨울인 노년기에는 절망감이라는 위기 감정이 찾아들도록 되어 있는데 그때 희망을 통해 위기 감정을 극복해 나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특별히 노년기에는 죽음이라는 위기가 언제나 함께 하기 때문에 자칫 위기 감정에 함몰되어 참으로 어두운 삶을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도 닫고 얼굴을 가리기 위한 옷도 두텁게 껴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인생의 노년기가 나이가 들어서만 찾아오는 게 아니라 젊은 시절에도 불쑥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불현듯 내 삶을 지배하는 어두움, 견디기 힘든 시련이나 고난의 때가 바로 정신적 노년기요, 정신적 겨울이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때 절망이라는 위기 감정이 온 마음을 지배합니다. 갑자기 어두움이 눈을 가리게 되고 마음의 온도도 영하로 내려갑니다. 그러한 겨울의 문턱에 서게 되면 누구나 외로움도 느끼고 또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허무함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바로 그러한 때를 맞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동안 혼신의 힘을 다해 하나님이 보여주신 푯대를 향해 달려가야 할 길을 뛰었습니다. 이제 결승점을 막 통과하려 하는 순간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로마에 있는 한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 곳에서 디모데에게 편지를 보내 빨리 와 달라고 재촉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자신의 죽음이 가까이 와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바로 앞 6절을 보면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인생을 그리스도의 제단에 이미 제물로 쏟아 부었으며 이제 의의 면류관을 받는 일만 남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외로울 수밖에 없는 몇 가지를 거론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10절부터 시작되는 오늘의 본문 말씀인 것입니다.

 

2.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먼저 주변에 사람이 없다고 말합니다. 10절에 보면 그동안 자신의 주위에 있었던 사람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데마는 이 세상을 너무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떠났으며 디도도 달마디아로 가 버렸다고 말합니다. 데마는 초기에 바울의 동역자였는데 아마 바울이 잡히자 배신하고 떠난 듯합니다. 그뿐 아니라 신앙마저 버렸습니다. 그렇게 떠난 이유를 사도 바울은 세상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레스게와 디도는 데마같이 배신한 사람들이 아니라 복음 전파를 위해 바울 곁을 떠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서 11절에 누가만이 자신의 곁을 지키고 있다고 밝힙니다. 지금 사도 바울은 외로운 듯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보고 싶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그리웠으면 9절에서도 속히 오라고 말하고 있고, 13절에서도 반복해서 오라고 강조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속히 오라고 재촉하는 이유는 사도 바울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 같이 인생의 겨울, 그러니까 시간의 겨울 뿐만이 아니라 환경적 겨울이 닥치게 되면 그동안 우리들의 주위를 지켜주었던 사람들이 떠납니다. 심지어 배신하기까지 합니다. 그것이 세상입니다. 특별히 날씨뿐만 아니라 마음도 추워지다 보니까 더욱더 자신을 떠난 사람들이 생각나게 되고 그러면서 사람이 그리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사도 바울은 가보의 집에 두고 온 외투를 가져와 달라고 요청합니다. 지금 사도 바울에게는 겉옷이 없습니다. 당시의 겉옷은 이불 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하는 필수품 중의 필수품이었습니다. 그만큼 겨울을 나는데 필요했지만 사도 바울에게는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살 돈도 없었습니다.

여러분! 사도바울과 마찬가지로 인생에서 겨울을 만나다 보면 정말 필요한 것들을 다 누리지 못하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겨울이 오기 전만 해도 다 소유하고 있었던 것, 누리던 것들도 막상 겨울을 만나게 되면 그 모든 것들과 결별하게 됩니다. 그러한 상실감이 정신적 겨울을 더욱 스산하게 만듭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해석하자면 겉옷이 없다는 것은 자신의 체면, 권위, 신분, 직위 같은 것들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은 그 사람의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신분의 을 스스로 내려놓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소유하지 못함으로 인해 상실감과 좌절, 절망감, 그리고 정신적 위축이 동반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신적 겨울이 가져다주는 치명적 상처인 것입니다.

셋째로, 사도 바울은 가죽 종이에 쓴 책이 없다고 말합니다. 가죽 종이, 그러니까 양피지는 당시에 아주 고가품으로 특별한 책에만 사용하였습니다. 그만큼 바울에게 중요한 책이었던 모양입니다. 바울은 지금 그 책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합니다. 우리도 환경적 겨울, 정신적 겨울을 만나게 되면 정말 중요한 것들이 없을 수 있습니다. 정말 귀한 것, 정말 소중한 것들이 내 곁에 없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때의 공허가 마음을 더욱 심란하게 만들면서 사람을 한층 우울하게 됩니다. 더욱이 한때는 소유했었으나 환경적 겨울로 인해 상실이 이루어졌을 때 다가오는 공허는 더욱 크다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없어졌거나 사라진 그 존재들로 인해 정신적 겨울은 더 깊어지고, 그럼으로 인해 그러한 비어 있음이 마음을 지배하면서 영혼을 황폐화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외로움과 슬픔, 비참함, 참담함 등의 감정들이 마음을 덮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시간까지 낭비하게 될 것입니다.

 

3. 그러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없는 그 존재들로 인해 얼마든지 정신적 우울 상태에 빠질 수 있었습니다. 외로움으로 인한 부정적 감정들이 그 마음을 지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러한 외로움의 질곡으로 마냥 빠져들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다시 푯대를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17절 말씀을 봅니다.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쉽게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인간적인 생각으로 본다면 도저히 기쁨이나 소망이 있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지금 감옥에도 갇혀 있고, 사람도, 겉옷도, 가죽 종이에 쓴 책도 비록 없지만 그런 소망 없는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자신을 굳세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사도 바울을 통해서 복음 선포가 완수되고 모든 민족들이 그 복음을 듣게 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자신을 해치려는 사자의 입에서 구출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에게는 삶을 여유있게 누리게 할 수 있는 중요한 환경적 요인들이 없었습니다. 그로 인해 외로움이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자칫 실족할 수도 있었지만 사도 바울에게는 그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인 충만함을 누리게 해주시는 존재가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하나님이 있었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모든 부정적 환경을 다 덮을 수 있는, 그리고 결국에는 승리할 수 있는 힘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에게 함께 하셨던 그 하나님이 지금 여러분과도 함께 하십니까?

 

4. 비어 있기에 충만해질 수 있다.

 

여러분! 시련이나 고난과 같은 인생의 겨울은 반드시 상실을 동반합니다. 뭔가 중요한 것이 지금 없다는 공허감이 부정적 감정을 만들어내고 그것들이 우울의 감정, 외로움과 합세하여 실족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모든 것이 사라질 수밖에 없는 인생의 겨울에 대해 영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내 마음에 중요한 존재들의 상실로 인해 비어있는 공간이 많다는 것은 오히려 축복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정말 대단한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선 그동안 나의 삶이나 감정을 좌지우지했던 그 중요한 존재들이 사라짐으로 인해 더 이상 그것들에게 끌려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적인 것들에 의지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의지할래야 할 수도 없는 환경이 오히려 나에게는 복된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바로 인간의 의지가 다 시들어진 그때, 아무리 사방을 둘러봐도 의지할 곳이 없는 바로 그때 역사하기 시작하시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세상적 의지처가 사라졌기에 이제는 온전히 하나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사람이 도저히 살 수 없는 광야에서는 오직 하나님을 바라봐야만 살아 갈 수 있듯이 인생의 겨울에는 그저 하나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인생의 겨울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릴 수 있는 지름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을 비움으로 인해 나타나는 축복인 것입니다. 이 점을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53절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다른 번역본으로 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라(가톨릭 성경)

그러니까 지금 인생의 겨울을 맞이하였다면 그로인해 의기소침할 것이 아니라, 자신을 스스로 불쌍히 여기며 시간을 허비할 것이 아니라 드디어 나의 마음이 가난해지기 시작했음을 흥분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비어 있는 공간이 크면 클수록 하나님이 역사하실 공간이 그만큼 늘어날 수 있음을 깨닫고 영적 충만함의 기대를 가지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영적 시각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것입니다.

 

5. 지금 인생의 겨울 가운데 있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혹시 인생의 겨울 가운데 있지는 않습니까?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고, 정말 꼭 있어야 할 것들이 없는 상실의 마음이 혹시 있지는 않습니까? 고난이나 시련이 지금 여러분 가운데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좌절하거나 위축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가슴을 쫙 펴고 드디어 때가 왔다는 적극적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드디어 하나님의 때, 하나님이 본격적으로 역사하실 때가 왔다는 기대감으로 충만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시점이 마음이 가난한 때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은 우리의 약함을 알게 하십니다. 바로 그때에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그때 십자가와의 만남이 필요합니다. 바로 그때 성령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필요합니다. 바로 그때 거룩한 말씀과의 만남이 필요합니다. 그때가 바로 영적으로 성장할 때요 축복받을 때인 것입니다.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에게는 노년이 겨울이지만 지혜로운 자에게는 노년이 황금기이다.”이 말을 영적으로 다시 해석해 보자면, 어리석은 자들은 영혼의 겨울을 만나면 좌절하고 무너져 내리지만 지혜로운 자들은 그 영혼의 겨울을 성장의 기회로 삼는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러했지만 다윗도 영혼의 겨울을 만났을 때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위기를 넘어 승리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마틴 루터가 작은 성경이라고 극찬을 했던 시편 119편에 보면 다윗의 외로움, 그리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통해 다시 힘을 얻게 되는 과정이 아주 자세하게 적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 외로움, 그 영적 겨울 가운데에서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신다고 고백했듯이 다윗도 시편 11949절과 50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소망을 갖게 되었으며 고난 중의 위로가 되었고 자신을 살리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71절에서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마음을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우리에게 많은 상실의 아픔을 가져다주는 영적 겨울의 때에 절대 어두움의 세력에 지배당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순간이 바로 하나님께만 초점을 맞출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엄청난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마음이 가난한 때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기에 바로 그때 열정을 가지고 더욱 불타올라야 합니다.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보면서 신발 끈도 조이고 허리끈도 단단히 매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슬픈 얼굴 하지 마시고 오히려 여유를 가지고 만면에 웃음을 띠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께서 내 곁에 서서 힘을 주실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에게 그리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영적 겨울의 문턱에 있다면 힘을 내십시오. 소망의 빛이 지금 여러분과 함께 하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의 디모데 후서의 엔딩부분은 지금 우리에게 바로 그 점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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