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상담설교

[상담설교] 덜어냄의 영성

관리자 2014.04.25 15:13:50

 

덜어냄의 영성

마태복음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1. 행복이란?

 

얼마 전에 영국의 민간 싱크탱크인 신경제재단(CNEP)에서 세계 143개국을 대상으로 국가별 행복지수(HPI)를 조사하여 발표한 바가 있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미국이나 일본 같은 선진국들의 행복지수가 높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조사 결과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1위는 코스타리카였는데 전국토의 25%가 자연보호구역이고, 에너지 사용량의 99%를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사용할 만큼 친환경적인 국가라고 합니다. 심지어 5년 전에 동부해안에서 유전이 발견되었지만 시추를 금지하고 대신 수력과 풍력 발전에 투자하는 그런 나라라고 합니다.

국가 행복지수를 보면 미국이 최하위 권인 114위이고 일본은 75, 우리나라는 68위였습니다. 동남아국가에서는 베트남이 5위로 아시아에서는 홀로 10위권 안에 있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부탄이라는 나라입니다. 1인당 국민 소득이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수백 달러였는데 최근에는 5,000달러로 급성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국가행복지수는 20068위에서 올해는 17위로 밀려났습니다. 그 이유를 분석한 것을 보니까 최근 산간마을까지 보급된 TV탓이 크다는 것입니다. 종교와 농사일로 일생을 보내던 사람들이 TV를 통해 바깥세상을 보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행복도는 하락하게 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자료들을 보면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헷갈리게 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행복이라는 말은 원래 우리말에는 없던 개념이라 그저 나름대로 개념화하고 나름대로 이해하기 때문에 더욱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쓰는 행복이라는 개념은 일본에서 수입된 것이라 합니다. 일본에도 원래 그런 개념이 없었는데 19세기 들어 일본의 학자들이 영어의 'Happiness' 프랑스어로 ‘bonheur’같은 단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고심 고심하다가 물질적 풍요와 관련이 있는 ()’()’을 붙여 신조어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일본의 학자들이 그렇게 ‘Happiness’라는 단어의 번역을 고심했던 이유는 ‘Happiness’의 어원이 하나님이 허락한 좋은 시간이라는 기독교적인 개념이어서 동아시아적 사고로는 설명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우리나라는 일본이 대충 붙여놓은 단어를 수입하다 보니 더더욱 제대로 된 행복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게 된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자.jpg

2.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이 구절을 새번역 성경에서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가톨릭에서 출간된 성경은 더 쉽게 쓰고 있습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여러분,

국가행복지수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우리가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질수록 더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그 끝이 없는 욕심에 자신을 맡기면 결국 파멸의 길이고 불행이라는 막장에 다다르게 되는 것입니다. 당연하지요.

항상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욕구불만이 가득합니다.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는 말만 합니다. 거룩한 일에, 의미 있는 그 무엇에 대해 배가 고픈 것이 아니라 탐욕이, 욕심이 덜 채워짐으로 인한 영혼의 허기짐인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그 탐욕의 대상이 우상이 되어 숭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 나라 갈관자의 천칙(天則)편에 보면 일엽폐목(一葉蔽目)’이라는 고사가 나옵니다. “나뭇잎으로 눈을 가리면 앞의 태산도 보이지 않고, 콩알로 귀를 막으면 우레소리를 듣지 못한다

그러니까 욕심이 마음을 가리면 볼 것도, 들을 것도, 보지도 듣지도 못함으로 인해 우매해진다는 의미이지요. 그러한 마음에서 감사가 나올 리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요즈음 자연을 참 많이 묵상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을 보면서 참 많은 은혜를 받고 또 깨닫게 됩니다. 자연은 결코 욕심을 품지 않습니다.

4월만 해도 잿빛 자연으로 가슴을 먹먹하게 하더니 5월이 되면서 제법 초록빛으로 보입니다. 그러더니 하얀 아카시아 꽃이 만발하면서 한껏 아름다운 자태를 뽐냅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 꽃은 사라지고 다시 푸르른 신록이 빛을 더해갑니다.

자연은 꽃이 아름답다 해서 언제까지나 그 꽃을 달고 있지 않습니다. 버릴 줄을 압니다. 버려야 산다는 이치를 이미 알고 있는 것이지요. 눈이 부시게 파란 하늘이 있습니다. 그 하늘은 구름이 가려도 하늘은 그저 그 구름의 배경이 되어줄 뿐 어떻게 보면 하늘이 구름을 돋보이게 만드는 것 같지만 그 구름 때문에 하늘이 더 우러러 보이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늘은 하늘이고 구름은 구름일 뿐입니다. 구름이 하늘을 가렸다고 하늘다움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니 이것이 바로 자연의 이치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산 지혜인 것입니다.

 

3. 덜어내야 가난해진다!

 

권소현 씨가 쓴 <사랑은 한 줄의 고백으로 온다>는 글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 자연은 아무리 사랑하는 존재를 만난다고 해도 고유한 자신의 특성을 버리지 않는다. 그것이 자연이 아름다운 진짜 이유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흔들림 없이 스스로에 대한 존재 가치를 꿋꿋하게 세상에 내보이기 때문에 자연이 경이로운 것이다. 우리도 자연의 일부다. 그렇기에 우리의 본성은 자연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살면서 만나게 되는 어떠한 삶의 질곡 앞에서도 나다움을 잃지 않아야 한다. ... 하지만 자꾸 그 사실을 잊은 채 사랑 앞에서, 돈 앞에서, 세상의 구차한 일들 앞에서 자신을 잃어가고 있다. 그것은 진짜 삶이 아니며, 진짜 나의 모습이 아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권력, 명예욕, 금력, 정욕 같은 세상의 유혹들을 만나면 하나님이 원래 우리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자녀다움’, ‘나다움을 잃어버립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세상의 유혹들에게 점점 함몰되어 그 마음을 다 내어줘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의 그릇에 하나님이 가득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그것들이 온통 차지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은 찾을 길이 없게 됩니다. 그러니 당연히 세상에 휩쓸린 삶, 추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가 다시 하나님의 자녀다움’, ‘나다움을 회복하려면 세상의 그 무엇들과 하나님의 것들이 섞여있는 마음의 그릇을 돌이켜 보면서 세상의 것들을 과감하게 덜어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마태복음 53절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고 살아가야 합니다. 행복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행복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세상적인 것들, 예를 들면, 권력, 명예, , 남이 부러워 할 아파트, 좋은 차. 좋은 직장 등등의 세상이 우러러 볼 그런 것들, 지향하는 마음, 주목하는 마음을 우리의 마음에서 덜어내어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이 가난해집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복음은 참 역설적입니다. 우리가 행복의 요소라고 생각하는 그것들을 오히려 버려야, 버릴 줄 알아야 행복해진다는 것입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받을 때 행복하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사랑을 줄 때가 더 행복한 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받을 때가 더 행복하다고 착각하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사랑을 받고 있는 그 순간, 자신이 받는 사랑보다 더 많은 양의 사랑을 이미 퍼 부어주고 있으나 그것을 인식하지 못함으로 인해 착각하는 것이지요. 사실은 더 많은 사랑을 주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4. 행복은 덜어냄에서 온다

 

사랑하는 여러분,

행복은 덜어냄에서 나옵니다. 덜어내어야 그 곳에 하나님의 마음이 자리하게 됩니다. 그래야 행복해집니다. 가지지 못한 것들, 꼭 가지고 싶은 그 마음들을, 그 욕심들을 덜어내야 합니다. 세상이 우러러 볼 것 같은 그 무엇들을 과감하게 덜어내야 합니다. 어쩌면 한 스푼 덜어낼 때마다 그마저 버리면 더 불행해질 수 있다는 마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탄이 주는 그 마음을 지워버리고 한 스푼이 아니라 한 바가지라도 과감하게 덜어내야겠다는 결단을 하고 행동으로 옮길 때 비로소 행복은 그 마음에 깃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 우리들의 삶을 되돌아보십시다.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힘은 무엇입니까? 내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욕심들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하고, 행동으로 표현하고 삶으로 드러내는 법입니다. 그 마음이 있는 곳에 보물이 있는 것입니다. 그 마음에 지금 세상적인 것들이 가득하지 않습니까? , , 돈으로 가득 차 있지 않습니까? 명예, 권력 같은 마음들이 혹시 넘쳐나지는 않습니까?

덜어내야 합니다. 덜어내야 마음의 풍랑이 잔잔해집니다. 날마다 침노하는 그 세상의 마음들을 덜어내야 내 마음에 평강이 찾아듭니다. 어떤 날은 집중호우가 내리듯이 세상적인 욕심들이 내 마음에 홍수를 이룰 날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셔서 그 마음의 흙탕물들을 덜어내셔야 합니다. 어느 날에는 가랑비 오듯이 내 마음을 적신 날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가랑비도 우습게 보면 안됩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하지 않습니까? 그마저도 덜어낼 수 있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53절의 마음이 가난한 사람덜어내었음에도 풍요를 느끼는 사람을 말합니다. 덜어내었음에도 불구하고 감사와 기쁨이 있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저는 요즘 날마다 마음의 호수에서 욕심을 덜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참 많이 덜어냈다고 생각하는데 문득문득 아직도 덜어내야 할 것들이 고개를 쳐들면 다시 묵상하면서 바가지로 또 덜어냅니다. 덜어내니 감사가 가득해집니다. 참으로 사소한 것에도 감사를 깨닫게 됩니다.

요즘에서야 마음이 가난한 자가 무엇인지 조금은 알 듯합니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이제는 조금 알 듯합니다. 행복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말씀하신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천국이 그들의 것이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조금씩 깨달아집니다.

마음을 덜어내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질, 환경도 덜어내십시오. 그래서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십시오. 사랑도 덜어내서 공동체에 나누어 주십시오. 행복마저도 털어내어 세상에 나누어 주십시오. 그럴 때 천국은 이미 우리 앞에 도래해 있을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아멘.

 

 

살구나무를 바라보며

추부길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