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자 2016.06.22 13:06:36
네 신을 벗으라!
▪ 출애굽기 3장 2-5절 ▪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 하는고 하니 그때에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밭에서 신을 벗으라

1. 신발은 그 사람을 표현한다.

얼마 전에 TV에서 상당히 큰 식당에서 신발을 정리하는 달인을 보면서 깜짝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손님이 들어오면 신발장에 보관했다가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고객에게 본인의 신발을 돌려드리는 역할을 맡고 있었는데 수백 명의 신발을 전혀 문제없이 정확하게 본인에게 찾아주는 것이었습니다. 십년 넘게 하다 보니 신발을 척 보면 그 사람의 얼굴이 바로 떠오르면서 주인을 찾아준다는 것입니다.
식구들 대 여섯만 되어도 자기 가족들 신발도 구분 못할 뿐더러 가끔은 자기 신발도 잘 못 찾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분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또 하나, 구두를 전문으로 닦는 분들의 말로는 구두 뒤축이 닳아가는 모습만 봐도 구두 주인의 인격이나 성격까지도 거의 정확하게 맞출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신발의 스타일이나 종류를 봐도 그 사람의 직업이나 여러 가지 면을 파악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신발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드러내는 하나의 상징물이라 할 것입니다. 아직 들어본 적은 없습니다만 ‘신발 심리학’이라는 학문도 곧 등장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도 오늘 신발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신고 있는 신발은 몇 켤레나 됩니까? 어떤 색깔이며 어떠한 종류입니까? 한번 신기 시작하면 얼마나 오래 신습니까? 대체적으로 보면 남자들은 한두 켤레의 구두와 운동화가 전부이지만 여자들은 특히 패션에 신경 쓰는 여자 분들은 전용신발장을 갖추어야 할 정도로 여러 켤레를 신는다고도 합니다.
저는 보통 한 켤레만 죽어라고 신습니다. 그래서 신발을 바꾸어야 할 때쯤이면 수선해서 스페어 신발로 두고 새 신발을 신는 편입니다. 구두 모양도 번쩍 번쩍 빛나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고 발이 편한 것 위주로 신습니다. 모양새도 좀 먼지가 있어도 표가 안 나는 것으로 고릅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대충 제 성격도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해서 정말 ‘신발 심리학’이라는게 만들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성서시대의 신발은 패션과는 거리가 멀었고 그저 발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샌들을 신은 것으로 보입니다. 가죽이나 나무로 밑창을 만들고 신발 끈으로 묶어 발에 들어가도록 만든 것입니다. 그것도 여유 있는 사람이나 신었지 일반 서민들은 맨발로 다녔다고 합니다. 아마 모세도 가죽신창에 가죽으로 만든 신발 끈으로 발을 매는 샌들을 신고 있었을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 신발을 벗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모세가 호렙 산에 이르렀을 때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일반적인 불과는 달리 나무가 타들어가지 않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도 그 광경을 자세히 보려고 그 불길 쪽으로 발을 옮겼습니다. 바로 그때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더 가까이 오지마라. 너는 지금 거룩한 땅위에 서 있으니 네 신발을 벗어라!”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신발을 벗으라고 하셨을까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2. 네 신을 벗으라!

성경에 나타난 바로는 ‘거룩한 땅’이니까 ‘신을 벗으라’고 했다는 사실만 나와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성서시대에는 상대방에 대한 지극한 존경심의 표시로 신발을 벗기도 했지만 그보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신발을 더러움의 상징으로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더러움이 거룩한 땅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씀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신발만 벗어 던진다고 해서 거룩한 땅에 합당한 사람이 되지는 않습니다. 여기에는 좀 더 영적인 해석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단지 신발을 벗는 외모적 행위로 만족하실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더러움의 상징인 ‘신발을 벗으라’는 것은 나의 몸에서 더러움의 상징을 벗어내 버리듯이 우리 영혼의 더러움도 벗어버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알게 모르게 지은 죄들, 지금은 내 지체가 되어 있는 죄들의 때를 다 벗어버리고 하나님 앞에 서라는 것입니다. 신발은 내가 어디를 다녔는지 다 압니다. 내 신발에는 내가 다녀왔던 모든 곳의 흙과 티끌들이 다 묻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의 행적을 신발에게는 속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죄악에 물든 신발을 벗어버리듯 내 영혼의 더러움도 다 털어내 버리고 하나님 앞에, 그 거룩한 땅에 서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신발은 발을 보호해주고 편안하게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당연히 신발을 신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고정관념입니다. 그러니까 집 밖을 나설 때는 필연적으로 신발에 내 발을 맡기고 그 신발에 나의 행보를 의지하게 됩니다.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신발을 벗어버리라는 것은 내가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의지한 그 무엇까지도 다 벗어버리고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그 거룩한 땅에 서라는 것입니다.
혹시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은 없습니까? 무슨 일이 터졌을 때, 고난이나 환난 가운데 있을 때 내가 가장 의지하는 존재는 누구입니까? 질투하시는 하나님은 자신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적인 것들을 벗어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서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신발은 나의 발을 덮어 싸는 것입니다. 그 신을 벗으라는 것은 있는 그대로 나아오라는 것입니다. 포장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그 거룩한 땅에 서라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라는 것입니다. 허세 부리지 말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룩한 땅에 서는 방법, 하나님 앞에 서는 방법인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가 하는 점이 훨씬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사회적 위치나 교회에서의 직분을 내세우면서 하나님을 만나려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나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또는 종교적인 뭔가로 우리를 포장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는 교만이라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학교에서 반장하는 자녀가 있습니다. 아무리 학교에서 반장이라 하더라도 아버지 앞에서는 그저 한 아버지의 아들로써, 딸로서 서야지 아버지 앞에서도 반장 행세를 하려 한다면, 반장의 권위를 가지고 아버지 앞에 선다면 잘못된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설 때는 모든 것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특권의식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포장지를 다 벗겨 버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쓸데없이 폼 재지 말라는 것입니다.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발을 벗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담긴 의미인 것입니다.

3. 날마다 마음의 신발을 벗으라!

그렇다면 어느 때에 신발을 벗어야 할까요? 특별히 언제 마음의 신발을 벗어 던져야 할까요? 고대 근동지역에서는 거룩한 장소에 들어갈 때 신을 벗는 것은 신에 대한 마땅한 예의이자 존경의 표시였다고 합니다. 지금도 불교나 힌두교에서는 도량이나 사원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습니다. 특히 이슬람 사원에 들어갈 때는 양말까지 벗어야 한다고 합니다. 물론 성경에는 제사장들이 신발을 벗어야 하는지에 대한 규정은 없지만 관습적으로 제사장들은 성전에서는 맨발로 다녔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미 말씀드린바 있지만 그렇게 눈에 보이는 신발만 벗을게 아니라 마음의 신발을 벗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신발은 벗지 않고 눈에 보이는 신발만 벗을 때 그것이 바로 외식하는 신앙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거룩한 땅’이란 어느 곳입니까? 교회의 강대상이 있는 곳입니까?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바로 그곳이 거룩한 땅입니다. 내가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다면, 기도하고 있다면 그곳이 바로 거룩한 땅인 것입니다. 내가 예배드리는 바로 그곳이 거룩한 땅인 것입니다. 내가 찬양하고 있는 그곳이 바로 거룩한 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거룩한 땅’에 서는 순간 ‘마음의 신발’을 벗으라는 것입니다. 나의 몸에서 더러움을 벗어 던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 무엇을 벗어던지라는 것입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마음의 신발을 벗는 삶이 생활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바로 그때가 마음의 신발을 벗는 순간이어야 합니다. 잠자기 전 기도하는 그 순간이 마음의 신발을 벗는 때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배드리기 전 조용히 침묵하면서 마음의 신발을 벗어야 합니다. 마음을 순전하게 비우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이 내 영 가운데 채워집니다. 그래야 내 마음이 옥토가 되어 그 밭에 말씀의 씨가 백배, 천배의 결실을 기대하며 뿌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의 신발을 벗는 습관은 단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천국의 모형인 가정에서도 행해져야 합니다. 집의 문을 여는 순간 신발에 묻은 먼지를 털고 신발을 벗는 것처럼 현관문을 들어서는 순간에 마음의 신발도 벗어버려야 합니다. 하루 종일 일하면서 내 마음에 묻어있는 스트레스와 분노, 상처... 그 모든 것들을 벗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 시간만큼은 가족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 순간만큼은 자신을 포장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가족 앞에 서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정 천국을 만들어 가는 방법인 것입니다.
당연히 집에 들어가는 자신이 마음의 신발을 벗어야 하지만 신발조차 벗을 기력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그 신발을 벗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으로 감싸는 것입니다. 마음의 신발을 벗어 던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가족의 의무인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날마다 순간마다 마음의 신발을 벗어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이 기력이 약하거나 쇠하여 스스로 그 신발을 벗지 못할 때에는 그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마음의 신발을 벗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중보기도요 또 위로와 격려인 것입니다. 신앙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로 마음의 신발을 벗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손길인 것입니다.

4. 떨기나무는 오늘도 타오르고 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세가 서 있던 호렙 산의 떨기나무에 붙었던 불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삶 가운데 타오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바로 그곳에 하나님의  떨기나무가 있고 그 떨기나무는 불에 타고 있습니다. 모세는 처음에는 그 불꽃을 지나쳐 갔습니다. 그러다가 불은 있으되 나무는 타지 않는 신비스러움이 눈에 밟히면서 가던 길을 되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그 떨기나무로 다가간 것입니다. 그것이 4절 상반절의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그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입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모세에게 나타나셨던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도 역사하고 계십니다. 모세도 처음에는 지나쳤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막 지나친 순간에 돌아서서 그 임재의 현장으로 다가갔다는 사실입니다. 모세의 뛰어난 관찰력과 통찰력이 돋보이는 장면입니다. 영의 눈을 크게 뜨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하면 표정만 봐도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집의 공기온도가 느껴지는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이 피워놓으신 떨기나무의 불꽃이 눈에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 불붙은 떨기나무가 보이면 혹시 지나쳤더라도 바로 돌이켜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손길이 느껴지는 그 순간 우리는 마음의 신발을 벗고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신발을 벗고 하나님 앞에 선 모세에게 하나님은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능력 받은 모세로 인하여 출애굽이라는 엄청난 역사가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 모세같이 우리도 마음의 신발을 벗고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 서게 되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역사를 대신 이루어갈 능력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그 사람을 하나님의 일꾼삼아 주실 것입니다. 복에 복을 더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 여러분들 모두가 영의 눈을 크게 뜨고 불타는 하나님의 떨기나무 앞에 서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거룩한 땅에서 마음의 신발을 다 벗고 순전한 마음으로, 비운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명령하십니다.
“네 신을 벗으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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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예수님의 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