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자 2014.04.10 15:43:51

여우와 살구기름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1. 소욕과 탐욕

 

사랑하는 성도님 모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샬롬이 넘치시길 기원합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욕심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소박한 욕심일 수도 있고 과도한 욕심이 불일 듯할 때도 있습니다. 소박한 욕심은 자신뿐만이 아니라 이웃에게도 행복과 평강을 주지만 과도한 욕심은 모든 것을 파멸로 이끌 수도 있습니다. 소박한 욕심을 우리는 소욕이라고 부릅니다. ‘소욕은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 그리고 자족함이 있어야만 가질 수 있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소욕은 기쁨과 감격을 가져다 줍니다.

그러나 과도한 욕심’, 탐욕은 불평과 불만을 가져오고 감사를 사라지게 만듭니다. 가치관과 인생관을 변화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우상숭배에 이르게 합니다.

 

창세기 36절의 말씀은 우리가 수없이 들은 선악과에 관한 내용입니다. 저는 며칠 전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참으로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늘은 그때 깨달았던 내용을 함께 나누려 합니다.

창세기 36절의 말씀을 나누려면 우선 창세기 29절 말씀부터 묵상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한 마디로 에덴동산에 있는 아담과 하와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모든 나무들이 다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도 좋았습니다. 그러니 특별히 어떤 것에 욕심낼 필요가 없었습니다. 당연히 평강이 넘칠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그 평온을 깬 자가 있었습니다. 간교한 뱀이 하와의 마음에 탐욕을 심어줍니다.

교묘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하면서 미혹을 합니다. 미혹이 마음에 들어오면 생각을 바꾸어 버립니다. 가치관이 변조됩니다.

31절을 봅니다.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미혹의 영은 항상 부정적 접근을 통해 긍정의 마음을 부정의 마음으로 변화시킵니다. 안되는 것, 나쁜 것부터 생각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216절에 보면 하나님은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임의로 먹되라고 말씀하시면서 17절에 보니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라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나무의 열매를 다 먹되 단지 선악과만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간교한 뱀은 관점을 바꾸어 놓습니다. 31절하반절을 다시 보세요.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러분, 미혹의 영은 우선 하나님의 세계관을 일단 부정하면서 접근합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일단 부정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면서 중심이 흐트러지기 시작합니다. 유도시합을 할 때 보면 운동의 기초가 되는 다리를 흔들어 버리면 몸이 다 무너지듯이 다리 걸기를 시도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하와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우선 하나님의 말씀을 희미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32절과 3절에 보니까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라고 말합니다.

보세요. 217절에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라고만 말씀하셨는데 하와는 거기에 자기의 생각을 덧붙여서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라고 대답합니다.

그 뿐 아니라 217절에서는 반드시 죽으리라”, NIV성경에서는 “You will surely die”라고 표현합니다만 강력한 경고를 하와는 죽을까 하노라”, “You will die”로 바꾸어 버립니다.

생각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안 간교한 뱀은 2차 공격을 해옵니다.

34절과 5절입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할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뱀은 한 마디로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립니다. 좀 심하게 표현하자면 치사한 존재로 바꾸어 버립니다.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부인합니다. 이미 미혹의 영에 빠진 하와는 , 그동안 속고 산 것 같다는 의심이 듭니다. “괜히 억울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36절을 보세요.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러분,

에덴동산의 나무들은 모두가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했습니다. 29절이 그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미혹의 영이 깃들고 보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라는 생각이 우선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한나무로 바뀝니다. 그것도 그 동안에는 나무 전체가 눈에 보였는데 이제 선악과만 눈에 들어 옵니다.

생각의 순서가 바뀐다는 것은 가치관이 변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했던 것이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한 것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이미 먹기로 작정하고 쳐다보았다는 의미입니다. 탐욕이 이미 그 마음을 점령해 버린 것이지요.

 

저는 중학교 다닐 때 미술반에서 써클 활동을 했습니다. 정물화를 그릴 때 보면 앞에다 사과와 포도, 쥬스가 들어 있는 잔을 잘 진열해 놓고 그리기 시작합니다. 다 실제로 먹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 때 그림을 그려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과일을 바라보는 시각이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것입니다. 보기에 아름답기 때문에 먹음직도 하지만 절제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정물화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미술부원 중의 하나가 배가 너무 고프다 보니 그 과일들을 보면서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생각보다 먹었으면 참 좋겠다”, “저 과일들을 먹으면 배부르겠다”, “저 과일을 보니 눈에 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것이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한것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그때부터 그 사람의 머리속에는 과일을 먹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을 것입니다. 탐욕이 그 마음을 지배한 것입니다. 입에서는 군침이 돌기 시작합니다. 눈은 동서남북으로 굴리면서 눈치를 보기 시작합니다. 손바닥에서는 땀이 납니다. 이미 그 눈에는 과일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먹어야 하는 욕정의 대상으로 변해 버린 것입니다.

 

지금 하와의 마음이 그렇게 변해 버렸습니다. 그 뿐 아니라 지혜롭기도 할 만큼 탐스럽게보입니다. 그동안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미혹의 영이 자리 잡으면서 자신도 하나님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교만이 그 마음에 가득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하와는 이미 마음에 가득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게 됩니다. 자신이 먹고 또 바로 옆에 있던 남편 아담에게도 줍니다.

대형 사고를 친 아담 부부. 나중에서야 잘못된 것을 알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그때서야 하나님께서 반드시 죽으리라라고 말씀하신 말이 기억납니다. 죽음이란 단어가 눈 앞에 아른거립니다. 얼마나 죽음의 공포가 심했으면 320절에 보니까 자기와 함께 한 여자의 이름을 붙이면서 하와라고 했겠습니까? ‘하와라는 이름의 의미는 살았다는 것이거든요.

 

2. 여우와 살구기름

 

사랑하는 여러분!

여우는 살구기름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우를 잡기 위해 살구기름에 독을 타서 유혹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 독이 든 살구기름을 여우가 잘 다니는 길목에 놓아둡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독이 든 살구기름에 수많은 동료들이 죽어 나간 것을 보았기 때문에 여우들도 살구기름에 독이 들어 있어서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여우는 그래서 살구기름이 보이더라도 그냥 지나치겠다고 작정하고 또 그렇게 지나칩니다. 그런데 몇 발자국 지나가다 보면 그 살구 기름이 자꾸 눈에 아른거립니다. 미련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냥 냄새만 맡아 볼까?”라고 생각하면서 가던 발걸음을 되돌려 돌아오게 됩니다. 냄새를 한 번 맡습니다. 한 마디로 죽이는 냄새지요. 침이 꼴깍 넘어가면서 그 살구기름 한 번 먹어보면 원이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냄새 가운데 빠져들면서 한 번 핥아 봅니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핥다 보니까 어느새 살구 기름은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독은 온 몸으로 퍼집니다. 여우는 어차피 먹은 것, 이제 죽음 따위는 안중에도 없게 됩니다. 그러다가 나머지 살구 기름까지 다 먹어버립니다. 결국 여우는 살구기름 곁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죽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선악과가 바로 살구기름입니다.

성경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선악과가 무엇인지 가르쳐 줍니다. 말씀을 통해 교육을 통해, 성령으로, 찬송으로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선악과를 깨닫게 되고 알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살구기름들이 너무나도 많이 존재합니다. 간교한 뱀의 유혹이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골로새서 35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저것만 가지면 내가 대단한 존재가 될 것 같다고 생각드는 것이 있습니까? , 권력, 명예 등등 내 마음을 끄는 뭔가가 있습니까? 그러한 살구기름이 하나님을 앞서는 순간 이미 우리는 우상숭배의 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내 안에도 혹시 살구기름이 있지는 않습니까? ‘살구기름이 마음을 지배하는 순간부터 우선순위가 바뀝니다. 하나님 우선이 아니라 살구기름이 우선이 됩니다. 그래서 예배드리는 시간보다 살구기름을 보고 만지고 생각하는 시간이 더 소중해집니다. 그때부터 이미 살구기름이 내 삶의 우상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돈이, 권력이, 명예가, 체면이, 집이, 심지어는 자녀가 나의 살구기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살구기름이 내 마음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감사가 사라집니다. 아담 부부는 에덴동산에 있으면서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선악과에 대한 미혹의 영이 들어가는 순간부터 선악과를 먹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잃을 것 같은 생각이 든 것입니다. 오직 선악과만 눈에 보입니다. 당연히 감사가 사라지는 것이지요. 그 욕심이 잉태하여 사망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동안 저의 삶을 참으로 많이 묵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범사에 감사하며 살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가진 것도 없지만 기쁨과 감격이 있었습니다. 죄에 대해 참으로 민감했고 날마다 애통해하면서 하나님을 대할 때가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별 것 아닌 존재였지만 저는 자족하면서 하나님이 공급해주시는 것만으로도 풍요를 누리면서 하나님 안에 거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살구기름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그 살구기름의 향연 속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름대로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는 명분으로 합리화하면서 세상 속으로 깊이 빠져든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우선순위의 역전이 이루어졌고, 그동안 삶의 다림줄이었던 하나님의 말씀은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모든 일의 목적이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그 무엇, 하나님과는 관계없는 그 일들이 제 발길의 등불이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탐욕.jpg

 

3.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지금 사소한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이 사라지지는 않았습니까?

하나님 나라를 먼저 구하라는 말씀의 다림줄이 희미해지지는 않았습니까?

그래서 세상의 그 무엇에 자꾸 집착하고, 시간의 우선순위도 먼저 부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꾸 스스로를 합리화하면서 스스로 결단하고 작정했던 목표에서 벗어나고 있지는 않습니까?

구체적으로 하루의 삶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얼마나 하십니까? 내가 깨어있는 시간의 최소 10분의 1은 하나님에 대한 생각으로 드리고 있습니까?

혹시 기도제목들 가운데 자신의 욕망이나 욕심을 채우고자 하는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있지는 않습니까?

거룩한 욕망과 이기적인 욕망이 충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 거룩한 욕망은 보이지 않고 이기적인 욕망만 넘치지 않습니까?

 

지금 당장 돌아보십시오.

살구기름이 얼마나 내 몸에 퍼져 있는지 점검해 보십시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감사의 고백이 나오지 않는다면 당장 우리의 삶을 점검해 보십시오.

주일 예배 한 번 드린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진정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가운데서 감사함을 누리고 살겠다고 결단하십시오.

그 옛사람들을 다 벗어버리십시오.

자칫 잘못하면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3:1b)라는 경고의 말씀을 듣게 될 지도 모릅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좇아 살아가면 육체의 욕심은 사라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갈라디아서 516절 말씀입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은 곧 자기 자신을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인생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감사가 넘치는 삶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그래서 세상이 아름답게 보임으로 인해 먹음직도 한 탐욕을 절제하게 만듭니다. 우선순위가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그때 마음에 거룩한 고요가 찾아들고 샬롬이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삶을 살아가실 수 있기를 축원 드립니다.

 

살구나무를 바라보며


추부길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