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자 2014.04.10 15:39:25

엠마오로 가는 길

누가복음 24:13-35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18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19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20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22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23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24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28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29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33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34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1. 공지영의 책,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어느 날, 새벽 1시 반경에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9시 반부터 잠이 들었으니까 약 4시간 정도는 잠 셈이지요. 잠이 오질 않아 머리맡에 있는 책들 가운데 그저 시간 보내기용으로 편한 것을 한 권 꺼내들었습니다. 저는 원래 머리맡에 책을 꼭 두는 편입니다. 언제든지 틈나면 보기 위해서이지요.

그 밤에 선택된 책은 소설가 공지영 씨가 쓴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였습니다. 소설가 공지영 씨는 잘 아시지요?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라는 책은 소설가 공지영 씨가 자신의 딸인 위녕에게 보내는 산문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책을 처음에는 누워서 읽다가 잠시 후에는 앉아서, 그리고 조금 지나면서는 연필로 줄을 그어가면서 읽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꼬박 밤을 새우게 되었습니다. 그저 시간 죽이기용 산문인지 알았는데 공지영 씨가 그동안 읽었던 책을 인용해 가면서 사랑하는 딸에게 자신의 모든 생각과 마음을 준 글이라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런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도중에 저의 가슴을 탁 치는 글이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두어 시간 가까이 묵상도 하고 성경도 다시 한 번 읽게 되었습니다. 공지영 씨가 읽었던 책 가운데 오스카 와일드<옥중기>를 소개하고 있는데, 공지영 씨는 오스카 와일드는 행복한 왕자라는 동화를 쓴 작가이면서 유미주의, 탐미주의를 표방한 데카당스의 선두주자였고, 방탕한 생활과 돌발적 어투로 시대의 문제아가 되었던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동성애를 하다가 감옥에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옥중기>는 그때 쓴 책이라고 합니다.

아버지가 유명한 의사이고, 어머니가 작가였던 집안에서 자라났고 세상을 풍미하던 그가 세상의 조롱을 받으며 감옥에 들어갔으니 그 심정이야 오죽 했겠습니까? 공지영 씨는 그 책 고통은 매우 긴 하나의 순간이다로 시작된 글 중에서 다음의 내용을 적고 있습니다. 바로 이 부분이 저의 마음을 확 두들겼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어떤 법칙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예외만이 있을 뿐이다. 그는 시적인 천성을 지닌 모든 사람들처럼 무지한 자를 사랑했다..... 그는 결코 인간을 개조하려 들지 않았다...(중략)... 그는 인간에게 무엇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그의 모습을 통해서 인간이 무엇인가가 되게 만든 것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그리스도의 면전에 서야 할 운명에 있다. 누구든지 그의 생애에 있어서 적어도 한번쯤은 그리스도와 함께 엠마오로 걸어가게 된다.”

 

누구든지 한 번 쯤은, 그의 생애에 있어서 적어도 한 번 쯤은 그리스도와 함께 엠마오로 걸어가게 된다.”

바로 이 문장이 저의 마음을 당겼습니다.

공지영 씨도 바로 이 문장에 대해 부연 설명합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이란, 예수가 죽은 후 그의 제자 둘이서 엠마오로 가는 길에 어떤 훌륭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그 길을 말하는 거야, 근데 그 어떤 사람이 바로 자신들이 죽었다고 슬퍼하고 있는 예수였어. 그들은 예수의 죽음으로 몹시 실망하고 있어서 부활한 예수가 함께 걷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던 거지.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그 스승이 죽어서 부활한다는 사실보다 어쩌면 그 스승의 죽음으로 인해 상심하고 있는 자신들의 마음이 더 중요했을지도 모르니까. 그저 사람들의 눈을 어둡게 해서 그들이 그토록 고대하던 그 사람이 자신과 함께 있다는 사실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거지. 아마 오스카 와일드도 역시 슬픔에 잠겨 있다가 깨달았을 거야. 이 슬픔에 잠겨 있는 길이 어쩌면 엠마오의 길이라는 걸, 그의 회개는 진실했던 것 같아.”

 

2. 엠마오로 가는 길

 

(1) 엠마오로 가는 길, 누구나 한번쯤은 걷게 된다.

 

사랑하는 여러분,

언젠가 <패밀리가 떴다>라는 TV 프로그램을 보니까 유명한 격투기 선수인 추성훈이가 손가락으로 송판 두 장을 깨기도 하고 그 손가락으로 유재석의 머리를 때리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데, 물론 게임에 져서 벌로 맞은 머리이지만 세상이 흔들리는 충격으로 정신이 혼미해지는 유재석의 모습이 기억납니다. 바로 그렇게 마치 추성훈의 손가락으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의 회오리 가운데 저는 한참동안 빠져 있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

누구든지 그의 생애에 있어서 적어도 한 번 쯤은 그리스도와 함께 엠마오로 걸어가게 된다.”

 

저는 누가복음 24장을 폈습니다. 그리고 13절에서 35절까지 꼼꼼히 읽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한 번 그 역사의 현장에 예수님과 두 제자뿐만 아니라 저도 동행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몇 가지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첫째, 엠마오로 가는 길은 실패와 좌절, 그래서 슬픔이 있는 길이었습니다. 절망 가운데 빠져 기가 죽어 있는 바로 그런 인생길이었습니다.

17절에 보니까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그들이 따르던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시자 모든 생의 의욕을 잃었습니다. 좌절했습니다. 이젠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1절 상반절 같이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지만 그 예수님이 죽으신 것입니다.

이렇게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 생기니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소식을 들었어도 믿겨지지 않고 믿고 싶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바로 그날, 그들은 엠마오로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이 살다보면 누구든지 이런 경우를 만나게 됩니다. 모든 것이 다 무너지는 경험, 그래서 하나님도 싫고, 세상도 싫어지는 경험,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싶은 그런 경우가 반드시 있습니다. 그래서 정처없이 방황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바로 그 때가 엠마오로 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 때 서 있는 바로 그곳이 엠마오로 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벗어나서 세상 속으로 가는 그 길, 그 길이 바로 예루살렘을 벗어나서 엠마오로 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2) 엠마오로 가는 길, 멀지 않다

 

13절을 봅니다.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 깨닫는 것은 엠마오까지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이십오리’. NIV 영어성경에는 7마일, 정확히 말하자면 11km입니다. 성인이 걷는다면 3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이를 영적으로 해석하자면 하나님의 사람들이 실족하더라도 결코 멀리 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바로 돌아올 수 있는 그런 거리라는 것입니다.

설혹 우리가 나락에 빠져 든다 할지라도 언제든지 U-Turn 할 수 있는 거리에 바로 엠마오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감당할 만한 시험의 거리일 지도 모릅니다. 더더욱 중요한 것은 엠마오로 가는 길에 나 혼자 외롭게 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3) 엠마오로 가는 길, 주님이 동행하신다

 

15절을 봅니다.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여러분, 15절 말씀을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제자 둘이서 그동안의 일들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하고 토론도 하면서 가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따라오셔서 그들과 함께 동행하셨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부른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가가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분이 주님이신 줄을 몰랐습니다.

16절입니다.

그들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사랑하는 여러분,

살다보면 정말 힘들 때가 있습니다. 인생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아무도 나와 함께 하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여러분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 엠마오로 가는 길에 예수님이 동행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단지 우리의 마음이 가려 예수님이 함께 하신 줄을 모를 뿐입니다.

분명히 혼자 외롭게 간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또 하나의 발자국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함께 하신 자국이지요. 물론 가끔은 한 사람의 발자국만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때는 내가 너무 힘들어 지쳐 있을 때 예수님이 나를 등에 업고 걸으신 자국일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언제 어디에 있든지 주님이 함께 동행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 엠마오로 가는 길, 주님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깊게 생각해 봐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들은 왜 예수님을 몰라 봤을까요? 우리들은 왜 주님이 동행하심을 알지 못할까요?

공지영 씨는 그들에게는 그 스승이 죽어서 부활한다는 사실보다 어쩌면 그 스승의 죽음으로 인해 상심하고 있는 자신들의 마음이 더 중요했을 지도 모르니까그러했을 거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내 안에 내가 너무 많다보면 진짜 보여야 할 것이 보이지 않게 됩니다. 내 안에 분노가 가득하면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내 안에 이기심이 가득하면 상대방의 선함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죄악이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 안에서 호흡하고 뒹굴다 보니 온갖 세상 것들이 내 안에 가득 차 있습니다.

 

복음성가 가수인 하덕규 씨가 작사, 작곡한 <가시나무>라는 노래를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곳 없네

 

그렇습니다.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아주님이 오셔서 거할 곳도, 쉴 곳도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이 동행하셔도 주님이 보이질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을 다 비워야 하나님으로 채울 수 있는데 우리들은 어리석게도 외로움의 빈 공간을, 공허로 인한 공백을 세상으로만 채워 허기를 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을 비우라는 것은 곧 주님 앞에 모든 것을 내려 놓는다는 것이고, 하나님께 나의 모든 것을 의탁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 안에 있던 는 죽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비워야 거듭날 수 있습니다. 비워야 새롭게 채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것에 집착하고 세상의 그 무엇에 미련을 갖는 한 우리는 결코 비움의 영성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18절을 보십시오.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마음이 비워지질 않으면, 마음에 세상이 가득하면 진짜 봐야할 것을 못 볼 뿐만 아니라 그 입에서 비난과 비판과 정죄가 나옵니다. 자기 생각이 그 마음을 지배하다 보니 하나님의 말씀도, 하나님의 뜻도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여러분, 그 가운데서도 위로가 되는 것은 우리가 그런 상황에 처해 있을지라도 예수님은 우리를 깨닫게 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차디차게 식어버린 그 마음을 뜨겁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25절부터 27절까지 보니까 예수님은 마음이 식어버린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도를 설명합니다. 그랬더니 제자들의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32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여기서 마음이 뜨거워졌다는 말씀을 NIV성경에서는 ‘heart burning'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뜨거워진 정도가 아니라 마음이 불타올랐다는 것입니다.

 

엠마오로 가는길.jpg

 

3. 엠마오로 가는 길에 있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엠마오로 가는 길을 걸어갈 때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가오시고 말씀을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그 심령에 직접 말씀을 주실 수도 있고 아니면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가족들이나 친구들의 권면을 통해, 좋은 책을 통해, 성경을 통해 전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엠마오 도상에 있다 할지라도 귀까지 막아버리면 안됩니다. 귀를 막고 눈을 막아버리면 불과 11km의 엠마오 길이 1,100km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만큼 돌아와야 할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지요.

 

그리고 또 하나, 여러분!

아무리 힘들고 지친 엠마오의 길이라 할지라도 그럴수록 주님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기를 청했습니다.

 

29절입니다.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시리라 때가 저물어 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그렇게 함께 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축복하는 기도를 해주셨습니다. 그랬더니 그제서야 제자들의 눈이 떠졌습니다. 그 분이 바로 주님이신 줄을 알게 된 것입니다.

 

30절과 31절입니다.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여러분도 혹시 엠마오로 가는 길에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지금 주님이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청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축복해주시기를 간구하시기를 바랍니다.

 

30절의 말씀 가운데 축사하시고의 의미는 감사기도를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NIV 성경에서는 ‘give thanks"로 적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우리가 엠마오로 가는 길에 있을 때 더욱 더 하나님을 찾아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해 줄 위로자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더욱 더 예배에 마음을 쏟고 더욱 더 기도에 힘씀으로 인해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지고 우리의 눈이 뜨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엠마오를 박차고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입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고백이 터져 나오면서 감격 가운데 주님의 얼굴을 보게 되고, 다시 새롭게 일어나 하나님의 도성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33절을 봅니다.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곧 그때로”, 다시 말하자면, 깨닫게 된 즉시로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날은 이미 저물었습니다. 엠마오에서 하룻밤 자고 예루살렘으로 간 것이 아니라 즉시 일어나서 밤길을 갔다는 것입니다.

엠마오로 갈 때 같이 그렇게 축 쳐져 갔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날아갈 듯한 걸음으로, 어쩌면 달리듯이 기쁜 마음으로 예루살렘까지 단숨에 갔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소명이 생겼습니다. 소망이 생겼습니다. 살아야 할 의미를 찾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알려야 하겠다는 소명, 이제는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하겠다는 소망, 그래서 복음을 전하면서 기쁘게 인생길을 가야하겠다는 인생의 의미를 찾게 된 것입니다.

 

4. 누구든지 엠마오로 가는 길을 걸을 때가 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은 누구나 실패와 실족으로 인한 좌절의 길, 바로 엠마오의 길을 걸을 때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엠마오로 가는 길에는 여러분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주님이 동행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엠마오 도상에 있다고 생각되면 자꾸 두리번 거리세요. 눈을 크게 뜨세요. 하나님을 찾으세요. 예배에 더욱 힘쓰고 기도로 주님을 만나세요. 그러면 마음의 눈을 뜨게 될 것입니다. 그럼으로 인해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즉시로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역사가 있게 될 것입니다. 승리의 자리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

어쩌면 우리의 인생길 자체가 엠마오로 가는 길일 수도 있지만 잊지 마세요. 당신은,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주님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우리 주님을 만나는 역사가 있으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추부길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