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을 붙잡으라!

(Seize the days!)

빌립보서 3:12-14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1. “언제 가장 행복했습니까?”

 

오래 전에 신문 기자가 찾아와서 저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언제 가장 행복했습니까?”

기자는 행복을 주제로 기사를 준비 중인데 행복했던 순간들의 모음을 통해 행복의 방법을 제시하려고 했던 듯합니다. 아마 저에게도 과거에 행복했던 순간들을 회상해주기를 바랬던 것이겠죠. 그 질문에 대해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합니다.”

그러자 기자가 조금 뜨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되물었습니다.

지금 무슨 일이 있으시기에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까? 뭐 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마 예상했던 답변이 아니라서 당황한 듯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과거의 행복했던 순간들을 기억하면서 지금은 그때같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 주어진 오늘을 별로 행복하지 않게 살아갑니다. 반면에 어떤 분들은 미래에 다가올 어느 날을 위해 지금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힘들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늘이 가장 행복해야 그 사람은 결국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저는 오늘을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렇게 살다 보면 시간이 흘렀을 때 모든 나날들이 다 행복해 질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상담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오늘을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과거나 미래에 행복을 두고 살아갑니다. “옛날에는 행복했었는데...”. “2-3년 전만 해도 좋았었는데...”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은 평생 과거만 회상하면서 오늘을 불행하게 살아갑니다.

반대로 “10년 후에 아파트를 사게 되면 행복해질 겁니다.”, “10여년 후 아이를 결혼시키고 나면, 5년 후에 아이들 대학 졸업시키고 나면...” 하는 식으로 미래의 약속어음을 붙들고 살아가는 분들은 그래서 그럭저럭 기쁨과 감동이 없는 하루를 살아가게 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히 믿음이 용가리 통뼈 같이 크고 굵고 단단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을 보면 천국에서의 삶을 위해 이 땅에서의 삶은 희생해야 한다’, ‘수도사처럼 모든 즐거움과 기쁨은 버려야 한다는 생각들을 합니다. 한 마디로 무채색의 삶, 백색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순결의 삶이고 정결한 인생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인이 되면 인생이 재미없어 진다.’고 말하고 제대로 누릴 것도 누리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들의 집단으로 생각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기독교인이 되면, 재미도 없고, 그래서 행복한 삶을 누리지 못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결코 아닙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가를 살펴봄으로서, 우리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날마다의 삶에서 최선의 행복을 누리고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 과거와 미래의 포로가 된 사람들

 

사랑하는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을 살면서도 과거의 포로가 되어, 과거에 매인 삶을 살아갑니다. 가장 흔한 행태 중의 하나는 우선 과거와 지금을 비교하는 것입니다. “그때는 행복했었는데...”, “그때는 안 그랬는데...”, “그때는 좋았는데....”

이렇게 그때는...’이라는 말을 꺼낸다는 것은 지금은 불행하다’, ‘지금은 과거 같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고, 더불어 지금 이 순간의 상황이나 지금 이 순간 나와 함께 하는 누군가를 비판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사람의 인생이 결코 행복할 리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과거라는 것이 지금의 순간, 순간들이 하나의 점, 점으로 색칠해지면서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게 되고, 그 이어진 선들이 과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의 점 하나가 불행의 색깔로 표시되는데 어찌 지나온 과거들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과거가 지금의 나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어느 순간과 지금을 비교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행동인 것입니다.

과거에 매인 또 하나의 행태 중의 하나는 과거의 나’, ‘과거의 자신에 붙들려서 지금의 자신을 비하하며, 또는 자위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왕년에 내가 누구였는데...”, “내가 옛날에는 어떠 어떠한 자리에 있었는데...” 하는 과거의 자신의 모습에 묶여 있다 보니까 현재의 자신을 잊어버리고, 찾지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과거의 자신의 모습에 묶여 있다 보니까 현재의 자신을 잊어버리고, 찾지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과거의 허상에 포함된 지금을 살아가니 삶이 가식적이고 과대망상적이며 위선적, 포장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공중에 붕 뜬 삶, 현실의 땅에 발을 딛지 않고 살아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사람에게 있어서 지금 이 순간의 삶의 흔적이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의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때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 유명한 삼미 철강, 삼미 슈퍼스타즈 야구단의 삼미그룹 부회장이었던 서상록 씨입니다. 이 사람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가 된 것은 삼미그룹 부회장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자리를 그만 둔 다음에 한 일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나이가 62세였는데 본인 생각으로는 앞으로 최소 20-30년을 더 살아가야 할 터인데 그냥 주저앉아 있기가 아쉽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선택한 것이 웨이터였습니다.

그 분이 쓴 글을 보면 당시 웨이터 선배들의 평균 연령이 26.7세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웨이터로 들어갔을 때 직속 선배 나이가 21살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무려 41살이나 어린 선배 밑에서 일을 배운 겁니다.

그 때 서상록 씨는 나이, 학력, 경력을 몽땅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분들을 선배로 모시겠다고 결심했다는 것입니다. 그날부터 40여년이나 나이 어린 선배들에게 철저하게 존대했습니다. 웨이터 생활이 시작된 지 1년여가 지났을 때 21살짜리 여자 선배가 할아버지 같은 서상록 씨를 어이하고 부르더니 복장 좀 다듬어라. 손톱 깎아라!” 잔소리하더라는 겁니다. 서상록씨는 그때가 그렇게 기뻤다고 말합니다.

드디어 내가 나이의 벽, 모든 체면의 벽을 넘겼구나 싶었다는 겁니다.

서상록씨는 과거를 벗어버렸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 13절 하반절에 뭐라고 말씀합니까?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다시 말해서 과거의 자신, 내 머리 속에 박혀 있는 과거의 자신으로부터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과거의 옷을 벗어버렸기에 서상록 씨는 웨이터로 일하다가 광고 모델도 하게 되고 탤런트로, 또 나이 70에 억대 연봉 회장직도 맡을 수 있게 된 겁니다.

 

여러분! 과거의 자신에 매어있는 것도 문제지만 과거의 어떠한 사건이나 말, 행동에 의해 지배되는 것도 문제입니다. 부부싸움 하는 것을 보면 대부분이 현재 일어난 어떤 일보다는 옛날에 당신이 나에게 이러저러 하지 않았느냐?”는 것들이 주요 갈등 확대의 양념이 됩니다. 싸울 때는 분명히 오늘 이 시간에 일어난 단서였지만 5분만 지나게 되면 금방 과거의 사건이나 말이 지금의 부부관계에 먹물을 던집니다. “그전에 당신이 그렇게 하지만 않았어도....”, “그 때 당신이 나한테 한 말 기억해?” 하면서 아직도 가슴 속에 생생하게 묻혀 있는 과거를 꺼내어 현재의 시간에 투하합니다.

한마디로 과거의 감옥에 갇혀있는 사람들입니다. 과거의 포로가 된 사람들은 과거와 화해하지 않음으로 인해 항상 과거의 덫에 걸려 넘어집니다. 그래서 과거가 힘들었으면 지금도 힘들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현재가 현재로서 자신에게 역사하는 게 아니라 현재는 힘을 잃고 과거의 어두운 무게가 현재를 짓누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의 삶에 기쁨과 감격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입니다. 그 과거가 지금을 지배하도록 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으로 달려가려면 뒤에 있는 것”, 그 족쇄를 벗어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푯대를 향해 달려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게 과거의 포로가 된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어떤 사람들은 반대로 미래에 묶여 있습니다. 미래가 오히려 족쇄가 되어 미래를 향하여 제대로 달려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상담했던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남편이 아내와 도저히 못살겠다고 하면서 상담을 요청해 온 것입니다. 듣고 보니 요즘 흔한 외도나 폭력 이런 것이 아니라 아내의 내핍, 검소 등이 지나침으로 인해 생겨난 갈등이었습니다. 아내는 결혼하면서부터 분명한 목표를 갖고 있었습니다. 결혼 날부터 15년 안에 최소 30평짜리 아파트를 사서 입주하겠다는 꿈이었습니다. 어려운 월세 생활을 거쳐 지금은 전세로 업그레이드(upgrade) 되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기 때문에 남들 가는 그 흔한 휴가도 가지 않고, 레저 생활 같은 여유도 갖지 않은 채 오직 미래의 그날을 위해 남편에게도 내핍, 근검, 절약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루 용돈 7,000. 7,000원이 아이들 용돈이 아니라 남편 용돈입니다. 만원도 아닌 달랑 7,000, 교통비 2,000원에 밥값 5,000.... 그게 전부입니다. 아무리 남편이 어르고 윽박질러도 소용없었습니다. 남편에게 그 정도니 아이에게 어떻게 할지는 눈에 보지 않아도 뻔한 것 아닙니까? 하나밖에 없는 아들, 중학교 다니는 이 아들 역시 엄마에 대한 불만으로 날마다 입이 댓자만큼 나와 있었습니다. 제가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 대단하십니다. 아파트 사서 편하게 살겠다는 그 의지, 그 목표를 위해 힘들게 살아가는 걸 보니까 참 존경스럽습니다.”

그랬더니 그 아내가 답을 합니다. “어렵더라도 참아야죠. 이제 조금만 더 고생하면 집 장만할텐데 그때 되면 우리 가족이 웃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겁니다.”

그 아내에게 제가 이런 말을 던졌습니다. “집사님, 그래요. 30평짜리 아파트 사면 이제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그때 되면 온 가족이 정말 행복하다고 생각할까요?”

여러분! 정말 그럴까요? 집 장만하면 그때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승진하게 되면 그때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분명한 것은 오늘을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사람은 미래의 어느 순간이 다가오더라도 행복을 누릴 수 없다는 점입니다. 결혼 전에 행복하게 살지 못한 사람은 결혼해도 행복하게 살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래에 다가올 그 무언가를 위해 지금을 희생하는 것같이 어리석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흥청망청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행복을 누리고 산다는 것은 돈과 관계가 없습니다. 상황과도 관계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을 대하는 마음가짐인 것입니다.

 

3.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다.

 

정호승 씨가 쓴 책 내 인생이 힘이 되어준 한마디를 보면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한 노인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산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노인은 내리쬐는 뙤약볕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지팡이로 박자까지 맞추며 신나게 노랫가락을 흥얼거렸습니다. 목을 쭉 빼고 노인을 쳐다보던 길가의 나리꽃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뭐가 그렇게 즐거우세요? 저는 이제 곧 시들어 비릴 것을 생각하면 슬퍼 죽겠는데, 할아버지는 어째서 그렇게 행복해 보이세요? 할아버지도 인생을 다 사셨잖아요?”

그래, 그래서 날 불렀구나, 나리꽃아, 너무 슬퍼하지 마라. 나도 얼마 있지 않아 세상을 떠나겠지. 하지만 소중한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이야.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나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 때문에 나의 현재를 망칠 순 없지 않겠니?”

 

그렇습니다. 여러분! 저는 정호승의 책에 실린 이 이야기와 함께 실린 글들을 보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과거는 오늘이 아닙니다. 오늘이 오늘입니다. 내일도 오늘이 아닙니다. 어제는 부도난 수표이고, 내일은 약속어음이며, 오늘은 준비된 현금입니다. 오늘 현재에 사는 것이 행복의 비결입니다.”

행복은 내가 지금 지니고 있는 것,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 내가 지금 만나고 사랑하는 이들한테 있지, 어제 내가 지니고 있던 것, 어제 내가 하던 일, 어제 내가 사랑하던 이들한테 있는 게 아닙니다. 어제와 똑같은 해가 오늘도 뜨고, 어제와 똑같은 바람이 오늘도 불어올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 모든 것은 어제와 다릅니다. 오늘은 오늘의 해가 뜨고, 오늘의 바람이 불어 올 뿐입니다.”

오늘이 중요합니다, 어제는 좋은 날입니다. 죽어 버린 날에 머물러 있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과거가 아름답지 않았다고 해서 현재 내 인생의 꽃이 아름답지 않은 건 아닙니다. 과거가 좋았다고 해서 오늘의 좋은 일이 과거만 못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오늘이 중요합니다. 지금 이 순간이 최고의 시간이요 정말 소중한 시간이며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우리는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 인생이라고 말합니다.

13절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쉬운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형제 여러분, 내가 아직 목표에는 이르지 못했으나 여러분에게 한 가지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내가 과거의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목표를 향해 힘껏 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앞에 있는 목표를 향해 힘껏 달리려면 자꾸 뒤를 돌아봐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 힘껏 달릴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지금 이 순간을 붙잡지 않으면 우리는 정해진 마라톤 구간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마라톤을 완주하는 사람들은 달릴 때 42.195km를 생각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저 앞으로 5km, 10km를 어떻게 뛸 것인가만 생각하면서 뛴다고 합니다.

얼마 전 그 유명한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 온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40여 일간, 매일같이 20-30km를 걷는 순례의 길입니다. 그 분도 그런 말씀을 했습니다. 순례의 길을 걸어갈 때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하나?’, ‘얼마나 더 남았나?’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저 오늘 걸어야 할 20km만을 생각하면서 걸었다는 것입니다. 현재에 충실한 것입니다. 오늘만을 생각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현재에 충실해야 정말 내가 향할 푯대의 길에서 이탈하지 않습니다. 마라톤 구간을 보면 파랗게 칠한 선이 우리를 인도하지 않습니까?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지 않고서는 금방 정해진 구간에서 벗어나거나 부상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을 붙잡으라는 겁니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힘껏 달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결코 지금의 현실에 안주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도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까? 12절 말씀을 봅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절 상반절 말씀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분명한 것은 현실에 안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직 내가 목표를 다 이룬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절대 현실에 만족하면서 주저앉아 있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충실하게 오늘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야 오늘이라는 현실이 생산적이 됩니다. 그래야 도전하는 내일이 또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참 인상 깊게 봤던 영화중의 하나가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입니다. 명문대 진학률을 높이는 것이 주된 목표인 전통적 학교에 괴짜 교사 죤 키팅(로빈 윌리암스 역)이 부임해 옵니다. 존 키팅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도전을 겁내는 대부분의 사람은 꿈을 억누른 채 살아간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도전하는 용기, 열정을 따르는 삶(Living with passion)을 살도록 강조하는 말이 있습니다. “꿈꾸는 것을 실천하려면 지금 이 순간부터 붙잡으라(Carpe diem, seize the day)”는 것입니다.

 

4. 지금 이 순간 행복을 누리라!

 

그런데 여러분!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삶, 언제 어디가 끝인지 모르는 마라톤의 삶에서 지금 힘껏 달리기 위해서는 달리는 것 자체를 즐거워해야만 합니다. 지금 내가 처해있는 환경, 지금 내가 있는 그 순간을 기뻐하지 아니하면 우리는 결코 푯대를 향하여 힘껏 달릴 수 없습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말이 있습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시편 118 24절도 말씀합니다.

이날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날이라 이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아침에 눈을 뜰 때 바로 이날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결단해야 하는 것이 바로 오늘을 즐거워하고 기뻐해야겠다.’는 것입니다.

상황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 비록 빈들에 있을지라도, 물이 없는 간조한 땅에 거할지라도, 온 세상을 덮는 폭풍우가 몰려올지라도 난 오늘을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이날을 즐거워하고 기뻐해야겠다.”고 결단하고 또 그렇게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남들이 바라볼 때 전혀 기뻐하고 즐거워 할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어떠한 상황이 닥쳐올지라도 나는 하나님 안에서 행복을 선택하겠다고 결단하는 것, 또 그 행복을 누리는 것이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마음에서 기쁨이 사라지도록, 감격이 사라지도록 만듭니다. 상황이 우리를 우울하고 슬프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탄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함으로 인해 우리의 마음이 어두워지고 우울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상황이 닥쳐온다 할지라도 그 가운데 감사의 조건을 찾고, 그 안에서 기쁨과 감격, 그리고 행복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를 누리는 비결인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다시 한 번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언제 가장 행복하셨습니까?”

뭐라고 대답해야 합니까?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합니다. 또 지금 이 순간을 가장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렇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는 푯대를 향하여 힘차게, 기쁜 마음으로 달려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살구나무를 바라보며 추부길 목사

20160521_084615.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