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자 2015.09.06 15:13:17

살구나무의 소리

너희는 용사라

사사기 6:11-24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12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13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 14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 15 그러나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하니 16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시니라 17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만일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18 내가 예물을 가지고 다시 주께로 와서 그것을 주 앞에 드리기까지 이 곳을 떠나지 마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너 돌아올 때까지 머무르리라 하니라 19 기드온이 가서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고 가루 한 에바로 무교병을 만들고 고기를 소쿠리에 담고 국을 양푼에 담아 상수리나무 아래 그에게로 가져다가 드리매 20 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고기와 무교병을 가져다가 이 바위 위에 놓고 국을 부으라 하니 기드온이 그대로 하니라 21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병에 대니 불이 바위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병을 살랐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아니한지라 22 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알고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하니 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4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것을 여호와 살롬이라 하였더라 그것이 오늘까지 아비에셀 사람에게 속한 오브라에 있더라

 

1. 겁쟁이 기드온

겁이 없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을까요? 자신을 스스로 나는 겁이 없는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은 남들에 비해 겁이 덜한 편이라는 것이지 전혀 겁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제가 아는 유명한 씨름선수, 이름만 대도 누구나 아는 그 선수는 의외로 벌레나 쥐만 보면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얼마 전 TV에서 중동의 어느 나라에 UN군으로 나가 있는 우리나라 정예의 최고 용사들이 인터뷰하는 것을 봤습니다. 그들의 주요 업무 중의 하나가 테러가 일어날 것에 대비하여 시내를 경비하고 차들을 검문하는 일이 있었는데요, 조금이라도 테러 징후만 보여도 긴장을 하고 사실 상당히 겁이 난다고 말을 합니다. 남성다움의 상징인 해병대의 최고용사들이 하는 말입니다. 누군들 겁이 없겠습니까? 다 겁이 있지요.

 

오늘 성경 본문을 보면 정말 겁이 많은 또 한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이 바로 기드온입니다. 11절에 보면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원래 밀 타작은 알곡과 가라지를 분리해 내는 일이기 때문에 바람이 부는 벌판에서 해야 합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포도주 틀에서 타작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포도주 틀이라는 것은 큰 바위에 둥그런 구덩이를 파서 포도를 넣고 밟아 즙을 만들어 내는 곳입니다. 이렇게 바람도 불지 않는 땅 속에서 곡식 타작을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도 안되는 일인 것입니다. 요즘 상황으로 말하자면 동네 들판이나 마당에서 해야 할 일을 목욕탕 욕조에서 타작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왜 그런 곳에서 타작을 했습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밀을 수확하고 있다는 것을 미디안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숨은 것입니다. 그만큼 겁이 많은 사람이 기드온입니다.

그런 기드온에게 여호와의 천사가 나타나서 한다는 말이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12b)입니다. 여기서 큰 용사라는 것은 아주 용감하고 대담하고 두려움이 없는, 겁이 없는 군사라는 뜻입니다. 미디안 사람에게 들킬까봐 겁을 내고 있는 기드온에게 여호와의 천사가 큰 용사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이건 도대체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그렇게 겁이 많은 기드온을 큰 용사’, ‘두려움도, 겁도 없는 용사라고 부른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그렇다면 여호와의 천사가 그냥 되지도 않은 소리를 해 본 것일까요? 농담한 것일까요?

 

그 말을 들은 기드온이 뭐라고 말합니까? 13절입니다.

“13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

한 마디로 이런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구요? 말도 안되는 소리 마세요.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면 우리가 이런 괴로움을 겪을 리가 없습니다. 비록 우리 조상들에게 많은 기적을 베풀어 주셨는지 모르지만 지금 여호와께서는 우리를 버리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미디안 사람들에게 정복당한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디안에게 정복당한 것이 하나님이 무력하시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그만큼 믿음도 없는 사람이 기드온입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다시 말씀합니다.

14절입니다. “14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

쉽게 표현하자면 이런 뜻입니다.

너에게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할 능력이 있으니 가서 너의 백성을 미디안 사람에게서 구하여라! 내가 너를 보낸다.

겁도 많고 믿음도 별로 없는 기드온에게 지금 뭐라고 하십니까? “너는 대단한 사람이니까 네가 이스라엘을 구하여라!이거 아닙니까?

그런 소리를 들은 기드온이 기가 탁 찰 수밖에 없지요. 아마 어이도 없었을 것입니다. “저 분이 도대체 나를 어떻게 보고 저런 소리를 하는 것일까? 사람을 잘못봐도 한 참 잘 못 봤네.” 그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 생각이 15절에 나옵니다. 15절을 보면 기드온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쓰여져 있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하니

쉽게 해석해 보면 이렇습니다.

아이고! 주님, 무슨 말씀입니까?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제가 이스라엘을 구원한다구요? 에이.... 무슨 그런 농담을 하십니까? 저의 집안을 보세요. 지금까지 훌륭한 장수 한 사람 나온 적도 없는 그야말로 별 볼일 없는 가문입니다. 거기에다가 저는요, 우리 집안에서도 가장 보잘것없는 형편없는 사람입니다.

특별히 15절 하반절에 보면 가장 작은 자라는 말이 나오는데요, 여기서 작다는 말의 히브리어 뜻은 그냥 체구가 작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 하는 주관적 이미지를 말하는 자화상인 것입니다. 한마디로 별 볼일 없는 사람’, ‘어디 내어놓아도 쓸모없는 사람이란 의미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만드셨는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스스로 자신을 평가하기를 기드온 같이 별 볼 일 없는 사람으로, 쓸모없는 사람으로, 이것도 부족하고 저것도 부족한 그런 하찮은 존재로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니 매일의 영적 싸움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투 한 번 제대로 해 보지도 못하고 그냥 무너지는 것입니다.

 

민수기 1317-33절을 보면 12명의 가나안 정탐꾼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와서 모세에게 보고하는 것을 보면 처음에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하더니 곧이어 그 땅에 대한 두려움을 이야기합니다. 민수기 1326절입니다.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만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32절 하반절에도 보면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계속해서 33절 상반절입니다.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그야말로 우리가 그들을 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을 뺀 10사람, 압도적 다수가 가나안에 대한 두려움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여러분! 여기서 주목할 만한 단어가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스스로 보기에도를 주목하세요. 그러니까 그들의 자아상은 엄청난 거인 앞에 메뚜기 같은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메뚜기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병든 자아상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 병든 자아상이 깨지지 않고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또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라는 부분입니다. 그들에게 물어본 것은 아닙니다. 그냥 그럴 것이라고 판단해 버린 것입니다. ‘메뚜기 콤플렉스를 합리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퇴로까지도 스스로 봉쇄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입니다. 이렇게 겁이 많고 두려움이 많으며 병든 자아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우리들인 것입니다.

 

2. 너는 용사라!

그런 우리에게, 그렇게 겁이 많은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용사라!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할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스스로 메뚜기 같은존재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용사같은 자로 보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기드온의 시각과 하나님의 시각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기드온 스스로는 겁도 많고 리더십도 없는 하찮은 존재로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 대단한 용사로, 리더로 기드온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기드온에게만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나에게 그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너는 용사라!”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사야서 431절에 보니까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예레미야 15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여러분!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스스로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강한 용사로, 대담하고 두려움이 없는 용감한 사람으로, 큰 영광과 용기가 있는 사람으로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자신에 대해 약한 점만 부각시켰습니다. 부족한 점만 쳐다봤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전부인양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잠재력은 생각해 보지도 않았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7-8%의 빙산의 일각만 봤지 물밑에 도사리고 있는 빙산의 실체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하나님은 분명히 독수리로 창조하셨는데 언제부터인가 날지 못하는 독수리가 되어 스스로 닭인양 살아간 것입니다.

이젠 스스로 외칠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닭이 아니라 독수리다”. “나는 용사라!”

약점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시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스스로를 동아줄로 꼭꼭 묶고 있습니다. 메뚜기 같은 존재로, 스스로를 바람 빠진 풍선으로 만듭니다. 스스로의 병든 자아상으로 독수리임에도 불구하고 날지 못하는 닭 인양 스스로에게 덮어씌우고 스스로를 묶어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용하지 못하도록 짓밟아버립니다. 하나님께서 쓰시지 못하도록 동여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직접 찾아오셔서 그 병든 자아상을 깨우치고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묶고 있는 동아줄을 끊게 만드신 것입니다.

스스로 만든 연약함으로 어마어마한 꿈들을 포기하지 못하도록, 위축되지 않도록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것입니다. 지금 물 밑에 숨겨져 있는 엄청난 잠재력이 그 잠을 깨도록 재촉하고 있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통해 자신을 보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그동안 자신이 쓴 안경으로만 자신을 쳐다보았습니다. 왜곡된 안경, 틀어진 안경으로 스스로를 쳐다 본 것입니다. 이제는 그 안경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눈을 통해 자신을 쳐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 기드온을 보세요.

스스로는 그야말로 형편없는 존재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그의 시각을 바꾸어 갔습니다. 하나님이라는 증거를 보여 달라는 기드온에게, 표징을 요구하는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친히 기드온이 요구하는 대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도록 보여 주었습니다.

미디안과 아말렉, 동방사람들의 연합군이 이스라엘을 침공했을 때 기드온은 또다시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그때도 참으로 기도온의 불신앙적인 모습에도 오래 참으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이어지는 사사기 7장에도 보면 그야말로 비상식이 상식을 이기는 어마어마한 일도 벌어집니다. 이런 일들을 통해 기드온은 점점 용사로 변해갑니다. 여호와의 천사가 기드온을 첫 대면할 때 말했던 대로 강한 용사로 변해 간 것입니다.

기드온이 이렇게 강한 용사로 변화될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의 자아상에 묶어두지 않고 하나님께 맡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했기 때문에 변화된 것입니다. 나는 지극히 별 볼일 없는 사람이지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만 하면 내가 대단한 용사가 될 수 있음을 체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러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나 스스로 보기에 나 자신이 그야말로 별 것 아닌 존재일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또 사실일지도 모릅니다. 그때 자신에 대해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주목해야 합니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는 것은 여기에도 해당됩니다. 지금 내 나이가 얼마인지, 내 직업이 무엇인지, 학력이 어떻게 되는지, 직장이 무엇인지, 재력이 얼마나 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기드온을 보세요. 포도주 틀에서 탈곡하고 있던 소심하고 겁 많았던 기드온을 보세요. 기드온도 한때는 그저 그렇고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확인한 다음부터는 생각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자신에 대한 개념이 변화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기드온같이 자신에 대한 생각을 다 벗어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을 통해 자신을 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어떠한 삶을 살길 원하시는지 그냥 맡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용사라!”고 말씀하시면 기드온같이 양털로 시험해 볼 필요도 없이 그냥 아멘!’하면서 받아들이시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는 우리 마음에 품은 자아상 이상으로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어느덧 큰 용사로 변해 있었습니다. 헬스클럽을 다녀서 그런게 아닙니다. 무술학원에 다닌 것도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이 동행하신다는 굳건한 믿음을 갖고 보니까 어느새 자신이 대단한 용사로 변해 있었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13절은 말씀합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여러분! 내가 먼저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는지 그 생각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아상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나는 비록 연약하고 그야말로 별 볼 일 없는 존재일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이 땅에 보내실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에게 맡겨진 무슨 일이든지 능히 다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4. ‘나는 큰 용사라는 믿음을 가지라!

네비게이토라는 선교 단체의 중요한 모토 중의 하나는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래전에 그 말씀을 꿈꾸었습니다. 그리고 믿었습니다. 저는 이제까지 그 말씀을 한 번도 의심해 본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제가 어두움의 빈들에 있는 그 순간에도 이 말씀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그 어두움의 시련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두움이 있기에 빛이 있다. 밤이 깊었다는 것은 곧 새벽이 다가온다는 전조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나를 위해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에게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도 함께 주실 것이라고 분명히 믿습니다.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이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믿음입니다.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은 무슨 일이 닥치든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으로 인해 하나님이 뜻하시는 그 모든 그림을 완성시켜 나갈 것이라고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너는 큰 용사라는 것은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심지어 대군이 공격해 올지라도, 인생에 엄청난 풍파가 닥칠지라도, 강물이 지나고 불 가운데 임할지라도 담대하게 용기를 가지고 당당하게 맞서는, 그래서 끝내는 승리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저를 향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생각합니다. 지금 제가 어디에 있는지,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저에게 하시는 말씀은 너는 큰 용사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담대하게 너에게 밀려오는 온갖 공격들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음성인 것입니다. “너는 충분히 그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다는 음성인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 그 어려움과 시련, 고난의 터널을 통해, 그러니까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 그리고 동쪽의 다른 백성들이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공격해 올지라도 능히 승리함으로 인해 결국에는 이스라엘에 평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 모두는 큰 용사인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대적이 우리를 삼키려 할지라도 담대하게 능히 이겨낼 줄로 믿습니다. 이겨낼 뿐만 아니라 궁극에는 하나님이 뜻하시는 엄청난 계획을 완성시켜 나가는 하나님의 사람이 다 되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밭에 감춰진 보화 같은 큰 용사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저 하나님의 손에 맡기기만 하면 기드온같이 엄청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주인공들이 다 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큰 일꾼들이 다 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큰 용사로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살구나무를 바라보며

       추부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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