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와 가정

가정 다시보기

관리자 2014.05.15 17:39:23
 
매년 찾아오는 가정의 달이지만 유난히 5월만 되면 스산해지는 가정들도 있다. 괜히 죄지은 것만 같고, 여러 눈들이 쳐다보는 것만 같은 그런 피해의식 가운데서 살아가는 가정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른바 비혼모 가정도 있고 한부모라고 말하는 편부모 가정도 있다. 그뿐인가? 장애아를 둔 가정도 있으며, 부부가 장애우인 경우도 있다. 거기에다가 기러기 가정같은 별거 부부, 나홀로 가정도 참으로 많다.
 
중요한 것은 우리 주님은 항상 이렇게 소외되고 반듯하지 못한 우리의 이웃들에게 관심을 더욱 가지고 계신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가 이러한 가정들을 돌보고 위로하며 힘을 실어 주는 것은 ‘선한 사마리아인’으로서 당연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렇다고 동정적 입장에서 접근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다. 삐딱한 사회적 편견이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고 있을 뿐이다. 어떤 경우에는 한번의 실수가 오히려 약이 되어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강하게 만들 수도 있고, 은혜 가운데 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은 사회적 약자인 이들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를 살펴본다는 것은 크리스천으로서의 바른 시각을 갖게 하기 위한 첫걸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출발이 나쁘면 모든 결과도 다 나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러한 잘못된 생각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출발은 정말 악했지만 선한 결과를 맺는 대표적인 가정으로 다윗과 밧세바를 들 수 있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이들 부부 관계는 한마디로 음욕으로 시작하여 결국은 한 가정을 파멸로 이끌었으나 후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케이스이다.
 
전쟁중이었던 다윗왕이 저녁때 지붕위를 걷다가 밧세바가 목욕하는 것을 보고 음욕이 동하여 그녀를 왕궁으로 불러 들이고 동침을 한다. 이 일로 인해 임신하게 되고 그것이 발각될까봐 드려워 밧세바의 남편 우리야를 결국 죽이게 된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게 되는(약 1:15)”성경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아무리 권력자였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였던 이 행위는 나단 선지자의 질책으로 이어진다. 곧바로 다윗은 회개를 하게 되고, 더불어 그로 인해 잉태되었던 아이는 죽게 된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보면서 ‘당연한 죄의 결과’라고 말을 한다.
그렇다면 그 가정은 이제 하나님의 눈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와 관계없는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단정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적고 있지 않다. 하나님 앞에 철저한 회개를 한 다윗에게 하나님은 밧세바와의 사이에 ‘솔로몬’을 허락하시고 왕통을 계승시키신다.
 
이러한 일련의 일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더불어 다윗과 밧세바의 사건을 현대에 조명해 본다면 어떻게 해석되어야 할까? 분명한 것은 이혼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혼을 미워하신다고 말씀하신다. 그렇다고 해서 이혼한 사람들을 버리시지는 않는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은 미워하시다가도 그들이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을 찾으면 언제 너를 미워했느냐는 듯이 다 품어 주시고 더 사랑해 주신다. 다윗과 밧세바의 사건이 주는 교훈이 바로 그것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이혼을 하고 또 다른 실수를 했다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지금 그가 어떻게 주님 앞에 서 있는가 하는 점이다.
아무리 주님이 미워하시는 일을 저질렀다 할지라도 지금 그가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가를 하나님은 눈여겨 보신다는 점이다. 다윗은 자신의 실수를 즉각 회개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긍휼을 구했다.
그러한 다윗의 모습을 하나님은 기뻐 받으신 것이다. 오히려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보다 덜 가진 사람들, 가슴 속에 안개가 가득한 사람들을 더욱 귀히 여기시고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바로 다윗 부부에게서 찾아 볼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법칙이다. 99마리의 양보다 잃어버린 한 마리를 소중히 여기시는 주님의 마음을 여기서도 읽을 수가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알아야 할 키포인트이다. 더불어 실수를 했거나 또는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남들이 볼 때 정상적이지 못한 가정을 향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정죄하시고, 단죄하시는 그런 무시무시한 분이 아니시다. 호되게 야단치시기도 하지만 그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심하게 야단치시고 뒤돌아서서는 눈물을 짓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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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그런 상황에 처해 있는 가정이라면 하나님이 주시는 이 소망의 메시지를 받아 들여야 한다. 중요한 것은 지금이라는 것이다. 지금 내가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는가에 따라 회복의 길은 물론이고 전보다도 더한 축복의 길로 나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더욱 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귀한 신분으로서 역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보아스와 룻의 경우를 봐도 외로운 인생을 살다가 새롭게 출발하는 부부들에게 큰 소망을 던져 준다. 두 아들을 잃고 낙향하는 나오미, 그리고 힘도 없고 아무 재산도 없는 시어머니를 따르는 룻. 아무 소망도 없는 이 두여인에게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가 쏟아진다. 재혼이라는 새출발을 통해 그 가문에서 다윗왕이 나는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축복받는 재혼을 했던 이 두사람의 예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는 순전한 사람들을 통해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결론은 분명해진다. 낙심에 빠졌을 때, 인생이 다 뒤틀린 것 같은 절망감이 자신을 덮어 올 때, 그저 나만 드라마 주인공 같은 느낌으로 주저 앉고 싶을 때, 바로 그 순간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찬스라는 것이다. 우리가 눈물흘릴 때 주님은 ‘장이 찢어지는 마음으로’우리를 쳐다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내가 풀죽어 있을 때에도, 내가 구덩이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에도, 심지어 내가 죄를 짓고 있을 그때에도 하나님은 내 곁에 계셨고, 나의 모든 모습들을 보고 계셨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셨다. 그 주님이시기에 우리의 모든 마음까지 다 아시는 것이다. 그 주님께 모든 것을 맡겨야만 한다. 그래야 새 소망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다시한번 강조한다. 문제는 지금 이 순간이다. 내가 지금 그리스도의 땅에 거하고 있다면 그의 상황이 어찌되었건 그의 인생은 새출발이요, 또 소망이 빛이 퍼지는 환한 도로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서 있다면 그저 어두운 밤과 안개 가득한 험난한 길만이 가다리고 있을 뿐이다.
 
더불어 부탁하고 싶은 것은 내가 지금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다고 해서 온전한 의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나보다도 더 어려운 가정, 뭔가 부족한 가정에 대해 그 가정의 주인공이 바로 나일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들도 하나님의 자녀이고 또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귀한 신분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지금 처해 있는 그 상황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그들이 어디에 서 있는가 하는 점이다. 주님 앞에 서 있다면 그들에게는 오직 소망의 빛과 하나님의 은혜만이 있을 뿐이다.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여! 힘을 내라! 무릎 꿇지 말라!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신다. 무엇이 두렵고 무엇이 부러우랴! 잊지말라! 지금 네가 서 있는 그 땅은 거룩한 곳이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