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자 2014.05.01 16:45:15
마음이라는 것은 어떻게 생겼을까? 왜 사람마다 그렇게 다를까? 모르는게 사람의 마음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전에는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아서 알 수 없다’고 하더니 요즘에는 ‘남자는 여자보다 더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거기에다가 남자와 여자의 그것은 깊이도 다르고 폭도 달라서 서로가 ‘안개에 쌓인 섬’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렇게 차이가 나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도 달라지고, 삶의 양식도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으며, 그 차이로 인해 어떻게 남녀가 구분되는지, 그리고 하나님은 왜 그렇게 남녀를 차이가 나도록 만드셨는지를 하나씩 살펴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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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로 불리우는 차이. 들소와 나비로 대별되는 남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미 상징적인 단어에서도 나타나지만 남녀는 언뜻 보기에 도대체가 하나될 수 없는 엄청난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죽 했으면 다른 별에서 온 두 사람으로 비교를 했을까? 또 엄청나게 덩치가 큰 들소와 가냘픈 나비로 비유를 했을까?
우선 들소인 남자는 폭이 넓어서 미풍에는 별로 반응하지 않는다. 그래서 국제적 정세가 뒤바뀌고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격돌하는데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아내가 머리 스타일을 바꿨어도 거의 눈치채지 못한다. 그것이 아내를 무척이나 섭섭하게 만든다. 여자 입장에서는 미국 대통령의 고부갈등(고어와 부시의 갈등을 칭함)은 전혀 관심의 대상이 되질 못한다. 오히려 아이가 성적 떨어진 것 때문에 속상해 하고 옆집 철이 엄마가 새롭게 해 입은 옷에 대해 관심이 많다. 이렇게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에 관심이 많은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을 한다. 그래서 보는 시야도 남자하고는 다르다. 남자는 저 멀리 숲과 먼 하늘을 쳐다 보면서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를 생각한다. 운전할때도 주변 여건에 신경쓰기 보다는 저 멀리 쳐다 보면서 운전을 한다. 그러나 여자들은 가까이를 보면서 폭넓게 본다. 교차로에서도 여자들은 180도 광폭으로 전후를 살피기 때문에 당연히 교차로에서 사고를 잘내지 않는다. 그러나 멀리 내다보는 시각이 약하므로 밤길 운전에 서투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남자들은 교차로에서 옆을 무시함으로 인해 사고를 잘 내기는 하지만 야간 운전에 아주 능한 강점을 가진다. 뿐만 아니다. 여자들은 저 멀리 몇 킬로미터 앞에 있는 물건에는 관심을 두지 않지만 10미터 전방에 서있는 남편의 옷 뒷깃에 달려있는 이상한 머리카락도 신기하게 잘 잡아낸다. 이런 차이로 인해 당연히 자녀교육의 방식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남자들은 자녀들의 시시콜콜한 문제보다는 큰 문제로 접근하려 든다. 그러나 여자들은 지금 당장 코 앞에 닥쳐있는 심각한 문제 - 그게 과연 심각한 일인지 아닌지는 전적으로 여자의 판단이지만 - 때문에 골머리를 썩는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 모습을 보는 남자들은 아내가 너무나도 과민반응을 한다고 생각하면서 오히려 짜증을 낸다.
이런 차이도 있다, 남자들의 마음은 괜히 붕붕 떠 다닌다. 별것 아닌 것 같은데 남자의 몸 속으로 들어 나갔다만 오면 엄청난 것으로 부풀려 있다. 그래서 단기로 군대 다녀온 사람이 어느 날 월남전 참전 이야기를 신나게 하고 있고, 전쟁의 문제와 총과 탱크에 대해 거품을 문다. 곧 과장과 허풍을 좋아하는 본능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여자들은 남자들의 그러한 허풍을 보면서 ‘또 시작이다’라고 단정을 하면서 귀를 닫아 버린다. 남자들이 하는 이야기는 곧 ‘자신이 제일 멋있고 최고이며 남들의 머리 위에 있는 사람’이라는 결론 하에 진행된다. 그러나 여자들은 말을 하는 것도 다른 사람들보다 머리 위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려기 보다는 ‘나는 당신과 동질의 사람,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입을 연다. 곧 친밀감과 집단 소속감을 주려는 목적의 대화를 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여자들의 허풍과 남자들의 그것은 질적으로 다르다. 남자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기 위해서 허풍을 떨지만 여자들은 비록 가진 게 없고, 옷이 후지더라도 ‘나는 당신만큼 많이 알고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내 세워 그 집단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는 목적을 갖는다.

물론 후천적인 영향도 있지만 남자들은 잘 울지 않는다. 그만큼 감정이 무디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다 보니 예쁜 꽃을 함부로 대한다. 무심결이기는 하지만 그냥 던진 그 말에 감정이 섬세한 여자는 엄청난 상처를 입는다. 하기야 들소는 그냥 장난 삼아서, 아니면 쉽게 생각하고 콧방귀를 한번 불어대지만 나비의 본성을 가진 여자는 그 콧방귀가 태풍이 되어 온 가슴에 휘몰아쳐 온다. 남자는 여자에게 엄청난 태풍을 가져다 주었다는 것도 모르고 콧노래부르며 출근한다. 아내는 하루 내내 태풍의 피해 때문에 하루 종일 울적하고 불편한 마음에 식음도 전폐한다. 그런데 퇴근한 남편은 자신이 발포했던 태풍은 전혀 기억도 해내지 못하고 아내의 수심어린 얼굴을 보면서 ‘당신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라고 태연하게 묻는다. 들소같은 남편이 나비 같은 아내의 그 여린 속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해프닝이다. 거기에다가 여자는 감정이 얼마나 풍부한지 모른다. 남자들은 TV 드라마를 보면서 코를 훌쩍거리는 아내를 도대체 이해하지 못한다. 어차피 픽션인데 그것을 보고 우느냐는 표정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자신이 비련의 주인공이 이미 되어 있다는 사실을 어찌 남편이 알수가 있으랴? TV드라마를 보는 여자는 심취하는 순간 이미 그 드라마 속의 배역이 되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 탤런트의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즉, 관계를 지향하는 속성을 가진 여자이기 때문에 드라마 배역과 이미 깊은 심적 유대관계를 가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속을 어찌 알 수 있으랴! 감정이 예민해서 사뿐사뿐 날아다니는 여자들, 반면 나비들이 그렇게도 아끼는 꽃들을 성큼 성큼 밟아버리는 남자들.....

남자는 짧고 굵다. 그러나 여자는 아예 그런 개념 자체가 없다. 말을 해도 남자는 ‘용건만 간단히’이다. 결론이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론만 알면 다른 이야기는 들으려 하질 않는다. 도중의 잔잔한 이야기는 한마디로 시간 낭비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아내는 결론이 중요하지가 않다. 그저 관계속에 한 부류가 되어 있는 것 자체가 즐겁다. 그래서 남편에게 ‘여보, 오늘 우리 아이가 이러이러한 문제가 생겼는데 어떻게 하죠?’라고 묻는 이유는 그러한 문제로 함께 하나된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자는 뜻이다. 그러나 남자는 그러한 아내 생각은 아예 머리에 두질 않고 당당하게 마치 그러한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이 ‘그건 이러 이렇게 하면 돼!’라고 짧고 굵게 대답해 버리고 TV 리모콘을 치켜든다. 그때 아내는 너무나도 속상해 한다. 아내는 답을 듣기 위해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것 자체도 남녀가 차이가 있다. 그래서 말 표현도 다르다. 남자는 머리의 언어를 쓴다. 곧 지식의 언어, 정보의 언어를 쓴다는 것이다. 그 말을 하더라도 그 말을 통해 얻고자 하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즉, 쟁취하려는 대상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자는 가슴의 언어, 마음의 언어를 쓴다. 당연히 여자는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말을 하기 보다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말을 한다. 그러니 부부간에 같은 말을 썼는데도 당연히 해석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어느 날 보름달이 둥실 떠 있을 때 아내가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여보 달이 참 밝죠? 야, 참 좋-다’. 그 말에 보통의 남자들은 어떻게 반응을 할까? 둘 중의 하나이다.. 역시 짧고 굵게 말한다. 유형1. “이 사람아 보름달이니까 밝지!”. 유형 2. “어, 벌써 보름이 되었나? 야, 시간 되게 빨리 가네...” 이런 말을 들은 아내는 어떤 심정을 가지게 될까?

그러니 말하는 수준이 남자와 여자는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미국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남자는 하루에 12,500단어를 평균적으로 멀하지만 여자는 2배인 25,000단어를 말한다고 한다. 그것도 남자는 100마디 말을 한 단어로 압축해서 말하는 반면 여자는 한 마디 말을 백마디로 풀어서 말을 하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당연히 말하는 단어의 수가 달라질 수 밖에.... 결론만 ㅈㅎ아하는 남자들은 아내가 무슨 말을 할라치면 ‘결론이 뭐야, 뭐 그렇게 사설이 길어?’라고 딱 잘라 버린다. 그러나 여자들에게 있어서는 결론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저 마음 속에 있는 말들을 주절주절 꺼내 놓는데 말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아내가 그러했다. 10년전만 해도 남편인 내가 아내의 말을 거의 들어 주지를 않았다. 날마다 쓸데없는 소리만 하는 아내의 말에 무슨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생각을 했다. 조금 관심을 기울여 듣다보면 내가 생각하기에는 아무 일도 아닌 일,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그러한 일들을 그렇게도 엄청난 사건인 듯이 말하는 아내에게 질려 버렸기 때문이었다. 거기에다가 어느 날, 나는 기절할 뻔 한 일이 있다. 아내가 평소에도 말이 많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 날은 해도 너무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길어도 한 시간 이상은 안하던 아내가 그 날은 화장실도 몇 번 다녀 오고 이것 저것 일 다하고 난 그 시간까지도 전화통을 붙들고 있는 것이었다. 거의 두시간 가까이 전화 통화를 한 다음에 하는 말이 나를 넘어지게 했다/ “예, 집사님, 자세한 것은 나중에 만나서 해요...”.
그 말하고 끝냈으면 모른다. 인사 말 하고 또 5분이 더 지나간다. 남자들은 2-3분만 이야기해도 할말 다 해버린다. 그래서 괜히 하늘 쳐다보는데 이 여자는 뭐가 그렇게도 할 말이 많아서 두 시간 이야기하고도 아직 자세한 이야기는 들어 가지도 못한 것일까? 그렇다면 자세한 이야기 다 할려면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그 날 이후로 나는 아내라는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말만 많은 여자’로 낙인찍어 버린 것이었다. 그런데 가정사역을 하면서 여자가 그렇게 말이 많을 수 밖에 없는 이유를 하나씩 깨닫게 되었다. 우선 남편이 평소에 아내의 말을 그렇게 들어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내의 말을 조금만 경청해 주기만 해도 아내는 그냥 속 시원해져 버린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존재인 남편이 그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아내는 25,000단어가 가슴 속에 사무치게 된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수다를 떨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친구를 사귀는 것도 남자와 여자는 확연히 구별된다. 마음을 다른 데 두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그러한 차이가 나는 것일게다. 남자는 뭔가 일을 같이 하면서 친구를 만들어간다. 그래서 운동을 한다든지 하다못해 바둑이나 테니스를 치게 되면 아주 급속하게 가까워 진다. 그러나 여자들은 그런 것 보다는 동네 철이 엄마 집에 모여 차를 한잔 나누면서 얼굴을 마주 대하게 되면 자연히 친구가 되어 버린다. 남자들은 그러한 자리가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지만 여자들은 그러한 자리가 너무나도 신이 난다. 우선 말 보따리를 얼마든지 풀어 놓을 수있다는 점과 시간가는 줄 모르고 보낼 수 있다는 점, 그러면서 또 하나의 집단으로 소속이 되어간다는 기쁨을 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창회를 가도 남자들은 술을 먹든지 노래를 부르는 등의 뭔가의 일을 만들어야만 한다. 그러나 여자들은 밥먹는 것 보다도 그저 말하는 것이 더욱 즐겁다. 그래서 밥먹는 시간이 서너시간은 족히 걸린다. 이런 연유로 남자 친구들의 동창회에 아내가 동반하면 남자들 따로 아내들 따로 모이게 되지만 여자들의 동창회에 남자들이 따라가면 남자들은 남자들끼리 뭔가 대화를 나누기 보다는 꿔다 놓은 보리 차두마냥 그저 음료수만 꿀꺽거리고 있게 되는 것이다. 

남자에게 있어서 사랑이란 연국에 있어서 막간이라고 표현한다. 즉, 남자에게 있어서 사랑이란 인생 전체로 보면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랑의 비중이 한때 클 수도 있지만 결혼이라는 목적을 이루게 되면 그 사랑의 비중이 별로 크지 않게 된다. 다시말해서 남자는 성취에 관심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성취하기까지 그 목표에 전력을 쏟는다. 여자를 내 손아귀에 넣기 위해(이것은 순전히 남자의 생각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 여자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목숨까지 내거는 시늉을 한다. 그러나 일단 결혼하고 나면 목표가 이미 달성되었기 때문에 남자들은 또 다른 사냥감을 찾아 목표를 재조정한다. 그것이 일일수도 있고 다른 무엇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연애 시절에는 여왕처럼 모시다가도 결혼한 후에 태도가 돌변하게 되는 것이다. ‘어항 속의 물고기에는 더 이상 미끼를 주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한평생 사랑하겠다는 약속은 어디론가 사라져 보리고 없고 결혼하자마자 달라지는 남자를 보면서 여자는 기은 우울속으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자에게 있어서 사랑이라는 것은 인생 전체가 걸려있는 문제이다. 연극 전체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이 던진 말한마디 때문에 하루종일 일도 못하고 우울속에 빠져있게 되는 것이다. 남편이라는 존재가 그렇게도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남편이 흔들린다는 것은 여자에게 있어서 곧 엄청난 대지진이 이 땅에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니 혼비백산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여자들은 결혼을 통해서 친밀성이 더 깊어 지리라 생각을 했다. 둥지를 틀고 한 이불을 덮으면 친밀성은 극치를 이룰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마음이 산산조각나 버리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여자의 낭만은 낭만을 위한 낭만이지만 남자의 낭만은 결혼하기 위한 낭만”이라고도 말을 하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남자는 인정받고 있을 때 마음에 힘이 생긴다. 살맛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자들은 사랑받고 있을 때 세상이 다 내 것처럼 느낀다. 남자에게 있어서 가장 치명적인 무기는 ‘당신은 도대체 쓸모가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때이다. 자신이 무능력하고 무가치하다는 말을 들으면 남자는 살 의미를 잃게 된다. 반면 여자는 누구에겐가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저 황홀경에 빠지게 된다. 그것이 확인되면 마음문을 활짝 열어 버린다.

차이를 말하자면 끝이 없다. 아마도 이 책 한권 전체를 다 할애한다 하더라도 다 적지를 못할 것이다. 그러한 차이를 가진 남녀. 왜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만드셨을까? 아예 비슷하도록 만들었으면 갈등 가운데 지지도 않고 단순하게 살아갈수가 있을 것 아닌가? 그 질문은 마치 ‘인간을 다 똑같도록 만들지 왜 이렇게 다르게 만드셨을까’ 하는 질문과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차이 속에 조화를 이룰 때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된다. 남편이나 아내나 취미도 같고 좋아하는 것도 같다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서로 다르기 때문에 다양함을 누리고 살아갈 수가 있지 않은가? 뿐만 아니다. 우리는 서로 다름의 극복을 통해 성숙에 이르게 됨을 얼마든지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다. 차이가 있다는 것은 불행한 것이 아니다. 그 차이를 조화로 바꿀수만 있다면 엄청난 풍성함이 기다리고 있게 된다. 그 차이로 인해 내가 더 다듬어져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내가 더 포기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돌아 볼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이 자기 주장만 내세우고 자기 것만 다 채우고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그 사람은 이미 폭군이 되어 버린 것이 아닐까?
하나님은 바로 이것을 원하신다. 서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차이를 통해 서로가 다듬어 가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럼으로 인해 성숙한 인격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그래서 차이는 좋은 것이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마음. 그 무궁함은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다. 그 깊이도, 그 넓이도 잴 수가 없다. 서로의 마음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도 아무도 알 수 없다. 자기 자신도 모른다. 당연히 그 넓은 바다 속에 일엽 편주 떠 있는 것이 지금의 나이다. 그리고 나의 배우자이다. 단지 그 마음에 바다에 한 방향을 향해 노를 젓고 있을 뿐이다. 내가 배우자의 마음을 얼마나 안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모르기 때문에 서로 인정하고 수용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헌신의 사건이 부부간에도 일어나야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바로 이것을 원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