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인들에게는 영혼이 천국의 입구에 도착하면 신들이 두 가지를 물었다는 신화가 있다. 그 영혼이 들어갈 수 있는지 없는지를 판가름하는 질문은 첫째, ‘네 삶에서 기쁨을 발견했는가?’이고, 둘째는 네 삶이 누군가를 기쁘게 했는가?’라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나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그동안 만났던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이 있는가?’, ‘삶이 즐거운가?’를 물었을 때 안타깝게도 긍정적으로 대답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질 않았다. 안타까운 일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중요한 본질 중의 하나가 기뻐하심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면서 좋았더라라고 말씀하셨다. 지으신 것을 보시고 기뻐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빌립보서 44절에서도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항상이라는 말은 어떤 경우에도를 의미한다.

살다보면 감사하고 기뻐할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어떻게 보면 세상 일 가운데 기뻐해야 할 이유를 찾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닐지 모른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무리 세상이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 할지라도, 아무리 이 땅에서 기쁨의 이유를 찾지 못한다 할지라도 주님 안에서기뻐할 이유를 찾으라는 것이다. rejoice하라는 것이다. 사소한 일에도 감격하고 즐거워하며 기뻐하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지금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은, 내 마음에 즐거움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세상의 염려와 세상의 생각들이 나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니 감격이 없다. 즐거움이, 기쁨이 사라지는 것이다.

 

우리가 사람과의 관계, 예를 들면 직장이나 가족, 이웃들과의 관계에서, 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기쁨이 없다면, 즐거움이 사라졌다면 지금 당장 영적 상태를 점검해 봐야 한다. 왜 기쁨이 없는가? 한 마디로 은혜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다 메말라버린 것이다.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 기쁨이 없다는 것은 회사에 처음 들어갔을 때의 감격, 은혜가 사라졌기 때문에 그러하다. 남편을 보면서, 아내를 보면서도 기쁨이 없다는 것은 처음에 뜨겁게 사랑했던 그 감격, 사랑을 거저 받음으로 인해 생겼던 은혜가 메말랐기 때문에 그러하다.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도 기쁨이 없다면,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도 즐거움이 없다면 그것은 지금 하나님으로부터의 은혜가 메말라 버렸기 때문이다. 그때, 그렇게 은혜가 메말랐을 때, 그래서 기쁨이 사라졌을 때, 다시 촉촉한 은혜, 풍성한 기쁨을 누리는 방법이 바로 주님 안으로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이 주 안에서라는 말인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날마다 숨 쉬는 순간마다 기쁨을 누리고 살아가기 원하신다. 왜냐하면 그래야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믿음이 굳게 서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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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을 좀 바꿔서 생각해 보자. 나는 지금 누군가에게 기쁨이 되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가? 누군가가 나로 인해 기쁨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하는 것이다. 오래 전에 아들이 성탄절 카드를 직접 그려서 나와 아내에게 선물하는 데 맨 마지막에 이런 글이 있었다. ‘기쁨주고 사랑받는 아들 정훈

그 문구를 보면서 정말 기쁘기도 했고 아들이 대견스럽기도 했다. 자기 스스로 부모에게 기쁨을 주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긍정적 자아정체감을, 자존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로, 그것도 기쁨을 주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삶에 기쁨을, 활력을 일으켜 주는 강력한 요소가 된다. 내가 배우자에게, 부모님에게, 자녀에게,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는 존재라고 인식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자아정체성인지 모른다. 그런 사람들은 인생을 대충 살지 않는다.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행복을 꿈꾸며 살아간다. 그러니 스스로의 삶에도 기쁨이 넘치는 것이다. 감격이 있는 것이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나는 내 남편에게, 내 아내에게, 내 부모님에게, 내 자녀에게 기쁨이 되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가? 여기서 기쁨이 되는 존재로 산다는 것은, 대단한 것으로 보답하고, 높은 지위로 많은 돈을 가져다준다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기쁨이 된다는 것이다. 왜 존재 자체가 기쁨이 되는가? 바로 사랑하기 때문에 그러하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사랑하는 바로 그 사람을 위해 기쁨이 되는 존재로 살아가게 된다. 그것이 본능이다. 그 원초적 마음이 사랑하는 그 사람에게도 전해진다. 그러면서 서로서로 존재로서의 기쁨이 교감하게 된다. 그것을 우리는 행복이라고 정의하는 것이다.

 

오늘 내 삶을 돌아보자. 나는 지금 과연 누군가에게 기쁨이 되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가? 자신의 삶에서 기쁨을 누리고, 또 누군가에게 기쁨이 되는 존재로 살아간다면 그는 정말 최고의 행복을 누리고 살아가는 사람이 될 것이다.    [추부길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