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들은 호기심이 강하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내내 감탄과 동경이 넘쳐난다. 어떻게 저런 발상을 할 수 있을까? 저런 생각의 근원은 어디로부터 시작된 것일까? 나도 상당히 혁신적이고 도발적이라 생각하지만 스티븐 스필버그는 그 상상의 차원을 넘어서는 듯 하다. 그런 스필버그가 이런 말을 했다. “가장 위대한 업적은 라는 아이같은 호기심에서 탄생한다. 마음 속 어린아이를 포기해서는 안된다.”

읽고 또 읽는다. 씹고 또 곰씹어본다. ‘아이같은 호기심’. 그렇다. 창조는 바로 그러한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그것도 순전한 호기심이다. 호기심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삶에 대해 생각을 안하고 산다는 증거이다. 그냥 주어진 현실이 지금 나에게 주어진 하나의 벽이라 생각하고 그 담 안에서만 생존하는 것이다. 그것은 산다고 말할 수 없다. 그저 생존 그 자체로서만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호기심이 있어야 새로움도 생겨난다. 창의적 발상은 호기심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무슨 일을 하든 간에 호기심이 있어야 뭔가 새로워진다. 그래서 뒤집어 보기도 하고 판을 뒤엎어 보기도 하는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는 절대 호기심을 갖지 않는다. 그 담을 넘어다 볼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호기심이 없다는 것은 삶의 의미 조차도 사라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인생 자체가 지루할 수밖에 없다. 그저 상황 속에서 현실에 안주하게 된다. 그러니 감격도 사라지고 눈물도 메말라 가는 것이다. 감사라는 단어가 잊혀지는 것도 바로 같은 이유에서다.

문제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호기심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날마다 수십 번, 수백 번 라고 묻는다. 왜냐고?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각 벽에 갇혀 갈수록 ?’라는 질문은 점점 사라져만 간다. 사춘기를 넘어서 청년의 때가 이르면 이미 ?’라는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그러니 세상이 지루해지고 그만큼 발전도 지체되게 되는 것이다.

인생에 왜 감동이 없을까? 삶이 왜 재미가 없을까? 감사의 마음은 언제부터 사라졌을까? 답은 호기심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궁금한 것이 많아야 세상이 재미있어진다. 그래야 책도 보고 뭔가 뒤적거리는 것이 많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도 깊어지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찬가지이다. 주어진 일에 대해 스테레오 타입화되어 그저 고정관념으로 생각하고 판단한다면 그 사람은 결코 발전이 없다. 진보하지 못하고 오히려 뒷걸음질만 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현상만 봐서는 안된다. 자꾸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를 말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일을 시킬 때도 무엇(what)을 어떻게(how) 하라고만 한다. 그러면 듣는 사람 역시 그저 시킨대로만 한다. ‘(why)’가 없다. 그러니 퇴보하는 것이다. 시키는 사람도 (why)’, ‘이유를 말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일하는 사람도 생각한다. 그러다보면 시키는 사람의 발상을 뛰어넘는 결과물도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진보하는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은 를 말하고 를 생각하며 를 뒤집어 보는 것이어야 한다. ‘무엇이나 어떻게는 그저 머리만 움직이게 만든다. 손만 까딱까딱 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는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정서적인 유대관계를 만드는 지름길이 된다. 타코벨의 CEO를 거쳐 얌브랜드 CEO로 일했던 그레그 크리드(Greg Creed)’의 주장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라는 물음이 나의 삶에 늘어나게 되면 그만큼 삶의 깊이도 깊어지게 되고 정서적 풍요함도 넘쳐나게 된다. 당연히 인생 자체가 깊은 운율의 감성을 담게 되는 것이고 그러다보면 고수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또한 젊게 사는 비법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수록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대상을 향하여 자꾸 를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이해도 깊어진다. 자녀를 향해서도 그러하고 요즘 세대를 대하면서도 라는 호기심을 자가가야 한다. 그래야 가슴에 그들을 품을 수 있다.

가 많아질수록 인생은 풍요로워진다. 감성도 풍부해지고 사는 맛도 생겨난다. 생각을 오해로 바꾸니 호기심도 늘어나고 그래서 찾고 보고 읽으며 또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신나는 인생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지금 ?’ 하라! 그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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