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멋진 한 글자, ‘왜?’
카피라이터 정철은 ‘머리를 9하라’라는 책에서 “새로운 발상을 하겠다는 사람에게 가장 어울리는 한 글자, 돈도 꿈도, 힘도 아니고, 그것은 바로 왜? 라는 한 글자다”면서 “가장 짧지만 가장 긴 생각을 하게 만드는 질문, 가장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질문이 바로 왜? 라는 한 글자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렇다. ‘왜’라는 질문은 스스로에게도 정말 중요하지만 서로가 하나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사실 ‘왜’가 없다면 모든 일은 겉돌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어떤 사람이 일에 열정을 내지 않는다. 하는 둥 마는 둥이다. 또 어떤 이는 일에 흥미가 없다. 그렇게 대충대충 사는 이유가 있다. 스스로에게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레그 크리드’라는 ‘타코벨’ CEO도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은 일반적으로 무엇(what)을 어떻게(how) 하라고 지시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이유(why)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유를 말해주는데 서툴다. 무엇은 머리로 참여하게 만들고, 어떻게는 손으로 참여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유는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정서적인 유대관계를 형성한다.”
그래서 이유를 말하는 ‘왜’는 정서적 유대감을 만들어주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말들 한다. 가슴이 움직여야 엄청난 에너지가 몸을 통해 분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일을 반드시 해야 하는 이유, 어떤 경기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절절한 이유가 있다면 그 이유가 성화처럼 타오르는 경기나 일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온 몸을 던지기 때문이다.
자라나는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엄마가 가장 귀찮아질 때가 4살에서 5살 때 쯤이다. 아이가 자꾸 ‘왜’하고 물어보기 때문이다. ‘엄마 저건 뭐야?’, ‘왜 그래?’ 세상을 마주 대하는 아이에게는 궁금한 게 많다. 호기심이 충만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아이에게 ‘왜’에 대한 답을 스토리텔링으로 해 준다면 아이는 상상력을 가슴에 품게 된다. 어찌 그뿐이랴? 세상을 심장에 담게 된다. 그러면서 미래를 배워가는 것이다.
문제는 ‘왜’를 물어 볼 엄마가, 아빠가 항상 그 자리에 없는 아이의 미래는 캄캄함으로 가득하게 된다. 그러니 세상을 멋있게, 신나게, 행복하게, 의미 있게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하게 되고 그런 연유로 방황하는 사춘기가 20대, 30대까지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어렸을 때 ‘왜’라는 호기심이 풍성했던 아이는 성장하면서도 자꾸 스스로에게 ‘왜’를 물어보게 된다. 어린 시절의 ‘왜’라는 질문을 통해 스스로를 성장시켜 왔기에 ‘왜’의 효용성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린 시절의 ‘왜’ 라는 호기심이 성인에게도 살아있다면 그 ‘왜’의 깊이만큼 인생은 성숙되게 되어 있다.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도 ‘가장 위대한 업적은 ‘왜’라는 아이 같은 호기심에서 탄생한다’고 했다. 그만큼 ‘왜’라는 질문이 인생을 거름지게 만들고 세상을 진보시키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스스로에게 자주 질문해야 한다. ‘왜(Why) 내가 이 일을 해야 하는가?’로부터 시작해서 인생의 중요한 일을 만날 때마다 ‘왜?’를 반복해야 한다. 그래야 헛길을 가지 않게 된다. 생각없이 한 행동 때문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했던가? 그로인해 얼마나 엄청난 과오와 실패를 경험했는가? 나 스스로도 겸허하게 반성하게 된다.
‘왜(Why)?’
나는 오늘도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현재 이 시간에만 묻는 게 아니라 과거의 일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져본다. 그래야 반성도 있고 회개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부터라도 아침마다 바로 이 질문, ‘왜(Why)?’를 던지며 사는 인생이 되어야겠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깊고 향기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