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과대평가

1964년 출간된 솔 벨로의 소설 ‘허조그’. 한때는 존경받는 교수였으며 많은 여성들의 가슴을 훔쳤던 미남이었던 주인공 ‘모지스 허조그’도 나이가 들면서 더 이상 여성들의 관심에서 벗어난 존재로, 그것도 한차례의 파경을 거친데다가 두 번째 아내인 메들린까지도 공공연하게 남편 허조그를 무시하면서 외간 남자와 잠자리를 갖게 된다. 세상 무상이다. 젊었을 때의 당당함은 사라지고 없다. 그러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증세 중의 하나가 그전에 알던 사람들을 만나 과거 이야기나 하고 감상적인 글들을 보내는 것이다. 요즘 말로 하자면 SNS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 한다는 이야기이다.
주인공 허조그도 그러했지만 이 세상의 많은 남성들이 나이 들어가면서 왕성했던 젊은 시절, 소위 잘 나가던 한 때를 그리워하며 상대적 박탈감을 지워보려고 별 짓을 다해댄다.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그 시절이 아른거리면서 결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을 되돌려보려 애를 쓴다는 것이다. 상실감은 허세를 불러오고 허세는 또다른 좌절과 절망감만 가져다 줄 뿐이다.

그렇게 비탈길을 내려가는 사람에게 삶의 의욕을 불러 일으키고 살아갈 이유를 찾게 만드는 일이 발생한다. 주인공 허조그에게도 그런 일이 생겼다. 30대 후반의 섹시하고 매력적인 여성 사업가 라모나가 허조그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사랑에 빠진다. 그 허조그에게 라모나는 이런 말을 한다.

“노인한테서는 노인 냄새가 난답니다. 여자라면 누구나 알아요. 늙은 남자 몸에서는 헌 옷에서 나는 퀴퀴한 먼지 냄새같은게 나요. (중략). . . 그렇지만 모지스! 당신은 정말이지 화학적으로 젊어요”
그렇게 말을 꺼낸 라모나는 맨살이 드러난 팔을 허조그의 목에 감으면서 말을 잇는다. “당신 살에서는 감미로운 향기가 나요... 매들린이 뭘 알아요? 얼굴만 예쁘지 아무 것도 아닌 여자라구요.”
그때 허조그는 이런 생각을 한다. “자기 도취에 빠져 거만하게 살다가 이제는 상처입고 품위도, 체면도 없이 고통받고 있는 늙은 나에게 이런 따뜻한 위로를 주다니, 자신이 왜 이런 축복을 받는걸까 생각해 보았다.”
허조그의 몸에서는 실제로 냄새가 났다. 그런데 라모나는 감미로운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이 바로 사랑의 힘이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말들 하지만 사랑은 또 사랑하는 대상을 자신도 모르게 과대평가하는 버릇도 생겨난다.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어떤 상황도 좋은 쪽으로 해석하게 하는 능력이 사람에 숨겨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에 빠진 이들을 보며 ‘콩깍지가 씌었다’고 말하기도 하고 ‘눈이 삐었다’고 표현하기도 하는지 모르겠다.

스피노자는 ‘에티카(Ethica)’에서 사랑에 빠지면 당연히 과대평가를 하게 된다면서 “과대평가(Existimatio)란 어떤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정당한 것 이상으로 느끼는 것을 말한다”고 정의했다. 그대로다. 사랑의 속성을 그대로 밝히고 있지 않은가?

사랑한다면 당연히 사랑하는 사람을 높이 평가하고 당연히 과대평가하게 된다. 반대로 누군가를 제3자의 눈으로 객관적 판단을 한다는 의미는 사랑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 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기에 사랑하는 사람끼리 사랑의 농도를 측정하는 간단한 방법은 지금 서로 나누는 대화, 물론 바디랭귀지를 포함하여 서로 소통하는 언어들이 얼마나 객관적인지, 아니면 얼마나 과대평가하고 있는지를 측정해 보면 된다. 뭐든지 긍정적으로, 과대평가하고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누군가를 플러스 평가를 하고 있다면 지금 그 사람은 깊은 사랑 가운데 들어가 있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그리고 부부라면 결혼생활의 기간이 길어지면서 사랑은 점점 무디어 가기 쉽다. 그러다보니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제 3자로 대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사랑의 신비는 점점 줄어들고 현실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될 때 인생 또한 피폐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는 현재진행형을 강조하고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형의 언어로 사랑을 독려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들의 사랑을 다시 한 번 점검해 보자. 상대방의 농도가 아니라 내 안에 자리잡은 사랑의 깊이를 다시 측정해 보자. 모든 문제는 나에게서 출발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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