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을 가르치는 교육이 필요하다!

  ‘너는 아빠가 일어나라고 할 때에 일어나야 한다!’, ‘너는 엄마가 공부하라고 하면 반드시 해야 한다!’, ‘너는 아빠가 조용히 하라고 하면 당연히 조용히 해야 한다!’, ‘너는 엄마가 입으라고 하는 옷을 당연히 입어야만 한다. 그래야 착한 사람이다.’

  아마도 전통적인 자녀 교육 방법은 이러한 일방적 명령이나 지시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가부장적 전통이 내려오는 나라면 어느 곳이든지 이러한 방법이 통했고, 또 자녀들은 잘 순종해 주었다. 가부장적 전통은 상-하 관계가 확실한 사회이기 때문에 부모들은 자녀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자기가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배웠던 그대로, 또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방식 그대로 행해도 문제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오늘날 같은 ‘자녀 교육’강좌가 필요가 없었다. 부모들은 자녀에게 명령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그 명령에 순종치 않으면 벌을 주면 또 해결이 되곤 했다. “너는 아빠 말대로 했기 때문에 참 착한 아이야. 그래서 너에게 이러이러한 상을 주겠다”, “너는 엄마가 말한 대로하지 않았기 때문에 너는 무슨 벌을 받아야 한다”아빠가 큰소리로 호령 한번하고 인상 한번 쓰면 시끄럽던 집안은 곧 평정되었다. 또 ‘착하지! 그렇지’하면서 치켜 세워 주면 자녀들은 하기 싫은 일도 곧잘 해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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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자녀들은 그 지시나 명령에 대해 반항하기 시작했다. 사회학자들은 전세계적인 조류가 독재적인 사회, 봉건적인 사회에서 민주적인 사회로 넘어가고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어찌되었건 지금의 우리 자녀들은 그전에 우리의 부모들이 쓰던 그 방식으로는 이젠 먹혀들지 않는다. 부모가 강요하면 할수록 자녀들은 문제를 일으키게 되어 있다. 부모의 압력이 거세면 튀어나오는 용수철의 원리처럼 더욱 강하게 반발한다. 잘했다고 상을 주고 잘못했다고 벌을 주는 방식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예전에는 사춘기에 속한 아이들이나 반항의 정도가 심했는데 요즘은 나이에 관계없이 튀어나온다. 이런 자녀들을 보고 부모들은 ‘요즘 얘들은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투덜대고, 자녀들은 그들대로 ‘신세대에 대해 전혀 이해도 못하는 구세대’로 치부되고 있다.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그렇다고 부모된 책임을 포기할 수도 없지 않은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참으로 사랑하는 내 자식들’은 너무나 부모 마음 모른다고 한탄만 할 것인가?

  부모 여러분! 이젠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자녀들을 내 마음대로 지배하려고 하는 그런 생각부터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내 자식 내맘대로 왜 못하느냐?’고 반문하는 부모가 있다면 아마 자녀들에게 강력한 반발만을 일으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인 나의 생각이 옳다고 자녀에게 강요해서는 안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녀들 스스로가 깨닫는 것”이다. 부모들이 보기에는 너무나 미숙하고 어리석은 것 같지만 자녀들 스스로는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그것이 잘못된 생각이요 행동일지 모르나 생명에 관계없는 일이라면 스스로 깨닫게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이러한 훈련은 아주 어려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다 큰 다음에 이런 훈련을 시키기에는 그 파급효과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아이가 밥을 먹지 않고 뛰놀고 있다. 저녁 먹으라고 손을 붙잡고 끌고 올 필요가 없다. 조금은 잔인하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 시간이 지나면 저녁을 못 먹게 된다는 인식을 심어 줄 필요가 있다. 늦게 자는 아이를 억지로 깨우려 하지 말라. 늦게 일어나서 한 두 번쯤 지각하게 만들어서 스스로 자기의 삶에 대해 책임지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 부모들은 한 번이라도 지각하게 되면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아주 큰 문제라도 생기는 양 호들갑을 떤다. 늦게 일어나는 것은 아이의 자유이지만 그것으로 인해 지각을 하게 되고 선생님에게 야단 맞는 것은 그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라는 그러한 책임 의식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한 번 지각한 아이는 다음부터는 시계 괘종을 두 개씩이나 준비해 두고 자게 된다. 스스로 깨달았다는 증표이다. 자녀들에게 충분한 자유를 준 반면 거기에 대한 책임도 크다는 사실을 어려서부터 훈련시켜야 하는 것이다.

  공부 역시 ‘공부해라. 공부해라’한다고 해서 공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 공부하려고 하는 마음가짐을 갖도록-공부하려고 하는 동기를 심어 주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가 먼저 TV를 보지 않고 솔선 수범해서 책을 보고 성경 공부도 한다면 자녀들은 보는 그대로 따라 하게 되어 있다. 백 마디 말보다도 훨씬 효용 있는 방법이 바로 이것이다. 스스로 깨닫게 만드는 것이다.

  방청소도 역시 그렇다. 조금 지저분하다고 해서 사는데 별 문제가 발생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부모가 자녀의 방을 깨끗하게 치워 주는 이런 일들은 하지 말아야 한다. 스스로 ‘아, 내방이 너무 더럽구나!’라고 느끼게 해서 자신의 결정에 의해 스스로 치울 때 그 자녀는 방 청소에 대해 배우게 되는 것이다. 부모가 항상 치워 주는 버릇이 이 자녀에게 익숙해 졌다면 방 청소는 평생 부모의 몫이 된다. 또 어지럽혀 졌다고 엄마는 자녀에게 화를 낼 것이다. ‘너는 도대체 뭐하는 얘니? 좀 깨끗하게 해 놓고 살면 안되니? 어이구, 언제 철들라고 저러지...’하면서 또 치운다. 이런 말을 듣는 자녀는 ‘왜 청소해야 하는지’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청소는 항상 엄마의 저런 잔소리 다음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으레 그럴 것이라고 치부하고 말기 때문이다. 이런 습성 하나가 부모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우습게 아는 풍조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책가방도 스스로 챙기게 만들자. 엄마가 시간표 봐 가면서 ‘이것 넣었니, 저것 넣었니?’하고 챙겨 주는 일은 제발 하지 말자. 혹시 라도 빠뜨린 것이 생기게 되면 그것은 자기 탓이 아니라 순전히 엄마 탓이 되고야 만다. 왜 그런 손해보는 장사를 하고 있는가?

  방학 숙제도 상당 부분은 아빠. 엄마의 몫으로 돌아온다. 아이들은 방학 때가 되면 핑핑 놀고도 믿는 구석이 있다. 막판에 몰리면 ‘마음이 더 다급해 진 엄마’가 앞장서서 숙제를 해 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가끔은 ‘이 공부를 누구 때문에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을 것이다. 왜 그런가? 분명한 것은 부모의 책임감이 강하면 강해질수록 자녀는 무책임해 진다는 것이다.

  특히 자녀를 하나나 둘 낳고 마는 요즘 세상은 더욱 그러하다. 애지중지 키우는 우리 아이가 혹시나 조금이라도 고생할까 봐 ‘안절부절’이다. “요즘 이 세상에서 제일 바쁜 사람은 대우 그룹의 김 회장도, 삼성의 이 회장도 아닌 바로 우리 집의 자녀들”이라는 말도 있다. 속셈 학원에 피아노 학원에 태권도까지, 미술 학원, 웅변 학원 등등 끝이 없다. 모두가 자녀가 좋아서 하기보다는 엄마의 의욕대로 끌려가는 게 보통이다. 여러 군데를 순회하고 돌아오는 지친 모습의 자녀는 ‘지겹다, 지겨워’를 연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자녀에 대한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자녀를 부모인 내가 원하는 작품으로 만들려고 하는 생각을 아예 버려야 한다. 자녀는 내 소유가 아니다. 조물주께서 단지 나를 통해 하나의 생명을 위임해 주신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청지기 정신이라고 말한다. 자녀에게 자유에 걸맞은 책임 의식을 심어 주는 일, 바로 이런 청지기 정신에서 비롯됨을 잊지 말자.

자녀. 그 나름대로의 인격을 가지고 있다. 나의 인격이 소중하다면 내 자녀의 인격 역시 중요함을 생각해야 한다. ‘내 자식이니까 내 마음대로 한다’는 생각이 자녀를 망치는 비결이다. 자녀를 살릴 것인가? 아니면 내 마음대로 가지고 놀다가 죽을 쓰고야 말것인가? 착각하지 말라. 내가 하는 이 자녀교육 방법이 우리의 자녀를 세상에서 출세하게 하는 길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 길이 패망의 지름길 일수도 있다. [추부길 이사장]
정말 자녀가 잘 되기를 원한다면 아예 자녀 신경쓰지 말고 우리 부부가 행복하게 사랑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어라. 그것이 오히려 자녀의 생명을 살리는 길이다. 길게 보자. 영원을 보자. 진정한 자녀교육이 무엇인가를....